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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욱대명중

대원외고

1년 전 교실에서 처음 친구들을 만난 지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떨리는 시험을 치르고 합격자 발표가 나서 이렇게 수기를 쓰고 있습니다. 일단은 1년 동안 함께한 친구들과 선생님들께 감사하고 싶습니다.

올해 초부터 구술 준비를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영어 준비만 했는데, 그 과정에서 내가 나름 잘한다고 느끼던 영어가 굉장히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고, 토플 듣기, 읽기, 그리고 영어 작문 등을 공부하며 실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2학기부터는 구술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언어는 중학교 교과서를 정확히 읽고, 정리하고, 여러 시를 읽어보고, 학원에서 기출문제를 많이 풀어봤기 때문에 어려운 지문에 닥치더라도 당황하지 않고 푸는 연습을 했고, 나중에는 무척이나 어렵던 시도 나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공부를 하면서 틀린 문제나 어려웠던 시는 오답노트에 정리해 시험 전에 한두 번 씩 꼭 봤고, 사자성어도 조금씩 외워두었습니다. 사회는 중학교 때 배웠던 것을 정리하며 심화된 것을 배웠고, 신문도 틈틈이 읽어 시사도 조금씩 익혀 두었습니다.

다른 많은 아이들은 구술을 1년, 1년 반 전부터 준비해 저는 상대적으로서 불안한 적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배운 것을 정확히 복습해 놓고, 틀린 것을 정리하고, 또, 가장 중요한 것은 많은 시간간과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에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다시 한번 같이 공부한 친구들과 선생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조형도삼선중

한성과고

내가 과고를 본격적으로 준비 한 것은 중학교 2학년 때부터였다. 하지만 내가 과고라는 존재를 처음 들었던 것은 바로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그때 과고가 무엇인지를 듣자마자 내 머릿속에는 “내가 가야 할 고등학교는 바로 과고이다.” 라는 말이 떠올랐다.

학원을 여러 군데 다니면서 어느 곳이 나한테 맞는 학원인지 알아보다가 토피아를 발견하곤 이후 토피아에서 공부하기로 마음먹었다. 과고를 가기 위해선 우선 기본으로 내신과 구술이 필요하지만, 앞으로 과고에 입학해 실력을 유지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 바로 올림피아드였다.

올림피아드는 그 당시(2학년)에 내가 가장 자신 있는 과목이 그나마 화학이었기 때문에 화학 올림피아드를 선택하게 되었다. 선택은 그 이유로 했으나 그 후부터 화학을 공부하게 되면서 화학이 재미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 다음부터는 아예 미래의 전공을 화학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데 한 가지 과목만 공부하게 되면 다른 과목들은 자연히 뒤처지게 되기 마련인데, 토피아 에서는 다른 과목들도 하이탑이라는 자습서를 통해 배우게 함으로서 뒤떨어진 다른 과목의 실력을 보충할 수 있었다.

구술을 대비할 때에 다른 학원의 과고 준비생들에 비해 그리 어렵지 않게 다른 과목의 실력을 쌓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앞으로도 과고 들어가서도 주 전공인 화학 뿐만 아니라 다른 과목도 똑같이 열심히 실력을 쌓도록 노력해야 되겠다.

정지수은성중

대원외고

제가 외고를 위해 준비를 시작한건 1년전쯤 이었습니다. 처음엔 막연하게 외고를 가겠다고 생각했지만 점점 공부를 할수록 확실하게 목표를 대원외고로 정하게 되었습니다. 목표를 정하게 되니 더 열심히 공부를 하게되었고 어느새 시험을 보는 날이 되었습니다. 너무 떨렸지만 지금까지 공부한 것을 믿고 열심히 봤습니다. 그리고 원하던 학교에 합격을 하게 되었습니다.

1년을 되돌아보면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처음엔 성적이 막 오르다가도 중간엔 열심히 해도 성적이 안 올라서 속상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준비할 부분이 너무 많아서 한 과목을 집중해서 하다보면 다른 과목 성적이 떨어져서 모두 열심히 하는 것이 힘들기도 했습니다. 원하던 목표를 향해 여러 친구들과 같이 공부하는 것은 힘들기도 했지만 보람있는 경험이었습니다.

그동안 열심히 공부했던 것을 생각해보면 합격한 순간 너무 뿌듯했고 그 순간은 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 경험은 나중에 더 큰 대학 입시때도 좋은 도움을 줄 수 있는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한 목표를 향해 열심히 노력할 수 있는 이 시간은 나중에 정말 소중한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정요섭한천중

한성과고

내가 토피아 학원에 처음 발을 내민 건 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 중학교에 입학 한 뒤 뒤늦게 공부를 시작했기 때문에 수학선행은 한 번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학교에서 진도를 나가는 데로만 공부를 하였고, 영어도 그냥 남들의 평균치에 맞춰 크게 뒤떨어지지 않는 정도였다. 그렇다고 예체능 쪽에서 무언가를 잘하느냐? 그건 더더욱 아니였다. 그런 내가 토피아에 다니게 된 것은 정말 새로운 기회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입학시험을 괜찮게 본편이라 처음 들어갔을 때 나름 만족할 만한 반에 배정되었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 곧장 학원 가방을 메고 토피아에 다니기 시작하였다. 학교 친구들이 많이 다니는 편이여서 다행히 학원에 오고 가는 것은 어색하지 않고 즐거웠다. 처음 배정된 반에 들어갔을 때 정말 긴장을 많이 했다. 반인원이 20명 가까이 되던 그곳에서 내가 정말 잘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수도 없이 하면서 그 반에서 영어 수학 둘 중에 하나는 누구에게도 뒤지고 싶지 않다는 생각으로 수업을 열심히 들었다. 특히 수학수업은 선생님이 정말 재미있었고, 설명도 정말 잘해주셔서 별다른 어려움이 없이 공부를 할 수가 있었다. 그렇게 약 5개월을 토피아 종합반을 다니면서 내가 생각하기에도 정말 놀랄 만큼 실력을 올릴 수가 있었다.

그러다가 토피아 과고반을 다니고 있는 친구의 추천으로 토피아 과고반을 뽑는 시험이 있어 보게 되었고, 내가 느끼기엔 선발시험 문제가 어려워서 떨어질 거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뜻밖에 붙었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붙었다는 전화에 정말 기분이 좋았던 것도 잠시. 과고반 수업은 예상 밖으로 어려움이 많았다. 종합반에서 주 3일이었던 수업은 주 6일 수업으로 바뀌면서 하루하루가 정신이 없었고, 학원생활에 적응을 하지 못 해 그냥 의미없이 가방만 가지고 왔다 갔다 했다.
그렇게 2주일 ... 3주일... 한 달이 금세 훌쩍 지나가 버렸다. 뭔가를 하겠다는 생각이라고는 눈꼽 만큼도 없이 그 날도 어김없이 앉아만 있었는데 반 담임선생님이 5월에 있을 천문올림피아드를 대비하기 위해 천문특강을 토요일마다 할 것이니까 모두 들으라고 하였다.

올림피아드가 뭔지도 모르고 있었는데 특강을 들으라니까 나는 “아 더럽다 학원 일주일 내내 나오게 생겼구나 ”라는 생각에 짜증이 났었다. 그런데 예상외로 특강은 생각보다 많은 도움이 되었다. 특강시간에 필기를 한 것은 천문시간에 수업을 내용 이해와 문제를 푸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러면서 학원에서 주는 문제나 내용설명이 있는 프린트 물을 보면서 모르는 것은 곧장 선생님께 질문하여 해답을 얻으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공부라는 걸 하고 있었다.

몇주일 뒤에 발표가 나왔는데 시험 결과는 장려상이였다. 하지만 나는 기분이 정말 좋았다. 중등과학을 끝낸 지 얼마 안돼 얻은 성과이기에 비록 상 등급은 제일 낮은 것 이였지만 나에게는 할 수 있다는 큰 의미를 부여해준 값진 보물과 같은 것과 같았기 때문이다.

그 때부터 공부를 하는 데에 있어서 의욕이 생기기 시작하였고, 학원 선생님들의 지도를 열심히 따라 하면서 과고에 붙겠다는 꿈을 키워 나갔다. 그렇게 묵묵히 공부하면서 1년이 지나서 특별전형합격자 명단에 내 이름이 떴을 때에는 ‘ 아 결국은 해냈구나 ’하며 입시 성공의 기쁨을 누릴 수가 있었다.

내가 합격하기까지 내 옆에서 든든한 조력자가 되어주셨던 선생님들이 계셨기 때문에 할 수 있었다. 내신 때는 내신준비를, 올림피아드 기간 때에는 선생님들의 퇴근도 미룬 채 자습을 하는 학생을 위해 질문을 받아주고, 먹을 것도 사주시면서 격려를 해 주셨다.

또한 올림피아드 기간이 끝나 나태해져 공부를 소홀히 할 때면 따끔한 충고를 해주시는 등 생각해 보면 나는 이 많은 것들이 내가 토피아에 있지 않았다면 해낼 수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특목고를 목적으로 공부를 하는 후배들에게 이런 말을 하고 싶다. 꿈을 꿀 수 있다면 이룰 수 있다는 말이 있다. 그 꿈을 토피아에서 선생님들과 함께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만들어 보는게 어떤가라고

이준혁상봉중

세종과고

초등학교 6학년 여름방학에 과학 고등학교라는 것이 어떠한 고등학교인지도 모른 채 토피아 민사과고반에 들어왔었다. 처음에는 내게 무리한 숙제와 영어 단어 시험은 힘들었다. 그래도 민사과고반에 다니는 것이 점점 익숙해지면서 1년이 지났다. 영어, 수학 수업을 골구로 해오던 민사과고반이 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부터 자신의 적성에 따라 민사반, 과고반으로 나뉘어 평소에 영어보다는 수학을 잘했던 나는 과고반으로 들어갔다. 그 때까지만 해도 올림피아드나 과고 입시에 대한 정보를 아무 것도 몰랐지만, 1학년 2학기 때 영재학교대비반에 들어가면서 단순한 수학 시간은 대수, 정수, 기하, 조합수업으로 나뉘어 심도 있는 학습을 시작했고, 과학은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으로 나뉘고 책도 올림피아드 입문서나 고등학교 참고서로 수업을 하면서 본격적인 과고, 영재학교 대비를 했다. 그 뒤로 올림피아드에 대해 알게 되면서, 수학과 생물 올림피아드를 준비하게 되었다.

과고 준비에 있어서 내가 좀 더 도약할 수 있었던 계기가 2가지가 있다. 하나는 2학년 봄에 있던 수학올림피아드 1차였다. 모의고사에서 그다지 좋은 점수를 못했지만, 실제 시험에서는 그 날 컨디션이 몹시 좋았던지 모의고사에서도 50점을 넘겨 본적이 없었는데, 59점을 맞아서 동상을 받고 무사히 1차를 통과했다. 수학을 비롯해 과학도 과고반 내에서 딱히 못하던 나였었는데, 시험 이후에 많은 자신감을 얻었다. 그 뒤로 여름방학에 수학올림피아드 2차와 생물올림피아드를 더 열심히 공부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비록 수학올림피아드 2차에서는 입상을 못했지만, 생물올림피아드에서는 은상을 받을 수 있었다.

2번 째 계기는 생물올림피아드가 가장 늦고 우리 학교 중간고사가 다른 학교에 비해서 너무 빨라서 올림피아드 후에 11일 동안 급하게 중간고사 대비를 하고 시험을 봤다. 나머지 아이들이 중간고사가 끝날 때까지 나 같이 중간고사가 비교적 일찍 끝난 학생을 위한 주 4회의 적은 수업 덕분에 자습을 충분히 할 시간이 20일 정도 있었다. 그런데 화학, 물리를 예전부터 너무나도 못했었다. 심지어 화학 시험에서 맞은 게 없어서 화학 선생님께 처참하게 꾸중을 들은 적도 있었고 화학 선생님뿐만 아니라 수업에 들어오시지도 않는 선생님에게도 너무 생물 과목에 치중 되어 있다고 주의를 받았다. 내 성격이 꼼꼼하지 못해서 내신을 잘 챙기는 것에 자신이 없어서, 내신이 안 들어가는 영재학교에 마음을 두었다. 영재학교에서는 수학,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 전 범위에 대한 능력을 요구했기 때문에 나로서는 공부를 많이 해야만 했던 처지었다. 따라서 이 귀중한 시간에 다음해에는 전 과목의 올림피아드에서 입상을 목표로 화학, 물리올림피아드 대비를 했던 아이들이 공부 했던 책을 구입하여 실력을 쌓아갔다. 이 때 밤늦게까지도 참고 공부를 하면서 잠도 많이 줄어들고 공부를 하는 습관이 들었다.



그 후 나는 생물올림피아드 대비반에서 화학올림피아드 대비반으로 옮긴 후에 일반화학 수업을 들으면서 물리올림피아드 대비반에서 푸는 문제집을 구입해서 풀어보고 생물올림피아드도 예전의 감각을 잃어버리지 않게 틈틈이 일반생물학을 읽었다.

다행이 새로 오신 생물 선생님께서 토요일 마다 생물올림피아드 대비반의 보충 수업을 하신다 길래 토요일 마다 생물올림피아드 대비반과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겨울방학에는 수학올림피아드 대비로 숙제가 너무나도 많아 힘들었지만, 지금 되돌아보면 하루하루 보람 있는 시간을 보냈었다.

3학년이 되고 수학올림피아드 1차를 은상을 받아 무사히 통과하고 영재학교 FINAL 대비를 시작했다. 예전부터 들어가길 소망했던 서울영재학교를 떨어졌다. 이전부터 영재학교를 목표로 오랫동안 공부했고 강남 토피아 영재센터와 교환 모의고사에서도 만족스러울 점수를 맞아 영재학교에 자신감이 많았지만, 너무나 허무한 실패였다. 그래도 아직 과학고등학교가 남아있었기에 좌절할 수는 없었다. 그 때 올림피아드 금상을 못 탔기 때문에 남은 지구과학, 수학, 생물올림피아드를 마무리 짓는 게 급했다. 금상 타기도 만만하고 금상 수도 적어서 특별전형에도 유리했던 지구과학에 남은 2주를 건 것이 참 탁월한 선택이었다. 더군다나 지구과학 선생님도 너무나 잘 가르쳐 주시고 지구과학올림피아드를 준비했던 학생들을 위해 도움이 되는 많은 자료와 책을 제공해 주셔서 지구과학에서 금상을 수상할 수 있었다.

이렇게 올림피아드를 모두 마치고 과고 구술대비 FINAL 대비가 시작되었고 그 동안 전 과목에 걸쳐서 공부를 했던 나라서 쉽게 공부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전형이 유리했던 세종과고에 원서를 넣어 운이 좋게도 특별전형으로 구술을 안보고 붙을 수 있었다. 내신도 나빠서 구술에 많이 불리했던 나로서는 정말로 다행이었다.

과고 준비를 하면서 잃어버려야 할 것들이 많았다. 많은 시간과 시간이 없어서 못했던 많은 것들을 잃어버렸다. 하지만 그것들을 포기하고 공부를 하여도 과고를 가고 싶다는 깊은 소망과 수학, 과학에 대한 열정이 있었기에 지난 3년이 허무하게 공부만 많이 한 시간이 아니라 목표를 이룰 수 있게 해준 보람 있는 시간이 된 것 같았다.

과고 준비를 하는 후배들을 위해 나의 생각을 덧붙이자면 과고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분명 수학, 과학에 대한 어느 정도의 능력이 필요하지만, 내신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실제로 충분히 실력이 있는 데도 불구하고 내신을 잘 못 챙겨서 과고에 들어가지 못할 학생들을 지금까지 많이 봐왔다. 그리고 과고, 영재학교 입시를 하면서 꼭 실력이 있는 학생보다는 시험 볼 때 잘 본 아이가 성공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어떤 시험이든 돋보일 정도로 실력이 없던 학생이 고득점을 맞는 경우가 항상 있고 너무나도 실력이 좋던 학생이 그 날 컨디션이 안 좋아서 예상했던 점수 보다 낮게 받는 경우도 역시 항상 있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생각하기보다는 입시를 하면서 일어날 수 있는 자연스러운 일이고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어떻게 보면 자기한테는 반성을 통해 다음번에 시험을 더 잘 볼 수 있을 기회이다. 또한 과고나 영재학교가 아니라도 일반 고등학교를 가서도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는 길을 많다. 끝으로 후배들에게 행운을 빌며 이 글을 마친다.

이예경휘경중

한성과고

‘눈물을 닦아내며, 한 걸음 더’

우선 감사드립니다. 저를 이끌어주신 선생님들, 옆에서 응원해주신 부모님, 그리고 나의 친구들.. 원래 성격이 여린 탓에 과학고 준비를 하면서 힘들어 많이 울기도 하였지만 모든 분들이 제 곁에 있어 합격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중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 TOPIA 과고반에 들어왔습니다. 처음으로 다녀보는 큰 학원이라 부담도 되었고, 친구들 전부 굉장한 아이들이었기 때문에 공부하는데 힘들기도 하였지만 제게 있어 과고에 합격하겠다는 의지는 무엇보다 강했기 때문에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저는 한성과학고를 학교장 추천전형으로 합격하였습니다.

2학년 때 아이들은 올림피아드 준비에 더 비중을 두었지만 저는 내신관리에 소홀히 하지 않았고 국어,영어,과학,수학 뿐만 아니라 전과목 내신까지 관리하였습니다. 내신기간이 올 때마다 항상 TOPIA 자습실에서 자율적인 분위기로 공부 양을 조절하였습니다. 공부의 효율이 떨어질 때는 5분 정도 휴식을 갖고 공부의 집중도가 지속될 때에는 쉬는 시간도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학원에서의 체계적인 자습으로 효과적인 내신관리를 하였고 좋은 내신을 받아 합격하였습니다.

과학, 수학은 아는 내용에 그치지 않고 학교수업을 충실히 듣고, 필기를 하였으며 국어와 영어 의 경우에는 선생님의 말씀 하나라도 빠뜨리지 않으려고 노력하였습니다. 내신을 열심히 관리하며 다른 사람에게서 ‘내신만 잘한다’ 는 말도 가끔씩 들어왔지만 끝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고 내신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또 올림피아드 기간이나 구술기간 때 선생님들께서 저희에게 써주시는 세심한 배려 덕분에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자신의 공부 양 조절에 초점을 맞추는 한편 간과하고 지나갔던 부분들을 한번 더 짚어 주셨고 강압적이지 않고 그 날에 따라 맞추어가며 심한 학업 스트레스 없이 공부해 나갈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과학고 꿈을 가지고 TOPIA 영재센터에서 공부를 하며 ‘한성과학고등학교’ 합격이라는 좋은 결과를 얻기까지 시련도 좌절도 많았지만, 그 모든 과정 속에서 저는 제 자신을 굳건히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과학고를 준비했던 2년의 시간, 제 인생에서의 순간에 불과하겠지만 그 2년이 제게 준 의미는 남다릅니다. 혼자 공부 할 수 있도록 해주었고 공부하는 의미를 일깨워 주었으며 문제를 해결해 나아가는 기쁨을 알게 해주었습니다. 입학을 앞두고 두렵고 초조한 마음이 있기도 하지만 모든 사람들의 축하와 격려를 받으며 당당하게 또 하나의 관문을 통과할 것입니다. 제게 자신감을 심어주고 실력을 쌓게 해주었던 TOPIA 학원 선생님, 친구 모두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제 발걸음에 힘을 실어 준 모든 분들 감사드립니다. 사랑합니다.

이승훈단대부중

대원외고

제가 처음 외고 입시 준비를 시작 한 것은 작년 12월 말 이었습니다.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 빠르기는 했지만 처음 6개월은 많은 공부 양을 소화 할 준비를 하고, 기본기를 탄탄히 다질 수 있었던 값진 시간이었습니다.

2학기는 본격적인 공부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진짜 외고를 향해 공부한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3개월로 접어들면서 제 한계에 도전하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하라면 하지 못할 만큼 힘들고 괴로운 시기였지만 정말 자기 자신의 한계를 시험 할 수 있는 값진 시간 이였습니다. 정말 좋은 친구들과 선생님들도 알게 되었고 제 스스로를 통제하고 뚜렷한 제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향해 뛸 수 있는 능력은 물론 가족들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외고 입시를 한 제 인생의 특별한 한 해는 평생 제 기억 속에 간직 될 것입니다.

저는 1년 동안 다른 외고입시 학원은 다녀 본 적도 없고 오직 토피아만을 믿고 공부하였습니다. 제가 토피아를 절대적으로 신뢰한 만큼 저를 신뢰해 주시고 저를 이끌어주신 선생님들과 체계적인 시스템이 있기에 지금의 토피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제가 많이 부족했던 언어 영역을 귀찮더라도 함께 밤을 세가며 공부해 주신 언어 선생님들, 평소에 관심이 있던 사회 영역을 제가 만족 할 만큼 깊이 공부할 수 있게 도와주신 사회선생님들, 기본 실력은 있었지만, 그 실력을 더욱 갈고 닦게 도와주신 영어영역 선생님들 등 수많은 토피아의 헌신적인 선생님들이 있기에 토피아는 정말 마음을 놓고 믿으셔도 됩니다.

일부 친구들은 다른 학원들을 동시에 다니는 경우가 있는데 제 생각에는 하지도 못할 책임을 너무 많이 짊어지는 것 보단 자기 역량에 맞게 적당한 공부 양을 최선을 다해서 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함에 있어서 토피아는 전혀 부족함이 없고 오히려 토피아의 공부에만 충실하더라도 상당한 실력을 키울 수 있습니다. 이것은 선생님들도 뛰어나시지만 무엇보다도 효율적이고 체계적인 토피아만의 뛰어난 교재들과 시스템이 있기에 가능하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기나긴 여정을 함께해주신 OMA 담임선생님 조안나 선생님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을 드립니다.

여인영대청중

대원외고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 합니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 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그리움과
별 하나에 상상과
별 하나에 친구야.. 친구야..

선생님, 저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봅니다.
학원시절 책상을 같이 했던 교우들의 이름과
이은주쌤, Cho Anna쌤, 이지연쌤, 서명숙쌤, Ann Kim쌤, 김효진쌤, Keith쌤, 옥성욱쌤,
임찬호쌤, 이런 은사들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이네들은 아직도 그곳에 있습니다.
별들이 꿋꿋이 제자리를 지키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언제나 제 곁을 지키셨습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들이 내린 언덕위에
내 이름자를 써보고
허무한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딴은, 별빛을 향해 날던 호랑나비도
막상 거머쥔 별빛을 보고는
씁쓸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겨울은 지났고 나의 언덕에도 봄이 깃들며,
무덤위에 푸른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발자국 남은 언덕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

손주영대일외고

녹천중

가장 먼저 저에게 공부 할 수 있는 여건과 지혜를 주시고 합격의 기쁨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응원해 주신 부모님 할머니께 감사드립니다.

지난 3년 외고를 목표로 공부하며 힘들고 지치고 어려웠던 시간이 이제는 추억처럼 기억에 스칩니다.

외고 진학을 꿈꾸며 영어 공부를 시작 할 때 생각보다 성적이 오르지 않아 포기하고 싶기도 하고 고민도 많이 했습니다. 어학연수의 경험도 없던 저에게는 노력에 비해 영어 성적 올리기가 좀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필요한 정보나 경험이 없던 터라 학교 수업을 충실히 하며 학원 수업에 최선을 다하는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학교수업 내신관리와 학원수업 방향이 다르기 때문에 두 가지 공부를 하기엔 항상 시간이 부족하였습니다. 학원 공부 양이 많았기에 거의 빠지지 않고 학원에 출석 하였습니다. 저는 시험기간에도 거의 빠지지 않고 학원에 출석하여 수업을 받았습니다.

과제는 빠지지 않고 수행 했으며 토피아 에서 보는 모의고사에도 전념하고 시험 본 후 틀린 문제를 확인하여 오답노트를 정리했습니다. 대일외고 시험보기 일주일 전에는 그동안 학원에서 작성한 오답노트를 중심으로 확인하고 정리하였습니다. 성적이 오르지 않을 때도 떨어질 때도 있었지만 목표를 생각하며 차근차근 했던 것이 가장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자신이 없었던 저에게 용기를 잃지 않게 격려해 주셨던 박 준성 선생님 김 창선 선생님 그리고 저의 성적을 꼼꼼하게 체크해 주시며 마지막까지 질책과 격려를 아끼지 않으신 유 진수 선생님 감사드립니다.

한 배를 타고 힘들 때마다 서로 위로해준 같은 그룹 친구들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박관우중계중

한성과고

제가 토피아 과고반에 들어온건 2학년 시작 전입니다. 처음 외고반에 들어가 1년을 배우다 겨울방학에 과고반에 들어왔습니다. 그때 너무 늦게 들어온 것 같아 방황을 하였습니다. 다시 외고반으로 들어갈 것인가 열심히 해서 따라잡을 것인가, 이런 고민을 거듭하면서 지쳐갈 때 학원선생님들께선 저에게 용기를 북돋아주셨습니다. “열심히 하면돼! 지금껏 잘해왔잖아? 앞으로도 계속 그런식으로 하면 될꺼야” 이 한마디가 저에겐 용기가 되어주었고 그 이후로도 학원선생님들께서 여러 번의 상담을 통해 저에게 앞길을 알려주셨습니다.

토피아의 장점은 자유로운 학습 분위기라는 것입니다. 강제적인 학습이 아닌 자율적인 학습과 친구들과 토론하며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보는, 선생님 혹은 문제 해설지에 의존하게 않는 그런 좋은 분위기입니다.

또한 모든 선생님들의 학생들에 대한 열정이라고 할까요? 밤늦게 공부하면서 보충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보충을 해주시고 학생들이 공부하면서 생기는 질문을 받아주셨습니다. 이렇게 2년이 반복되고 저의 실력은 굉장히 크게 발전했습니다. 공부방법을 저에게 알려주신 거죠. 규칙적인 공부습관과 스스로 공부해야겠다는 마음을 들게 하는 그런 분위기가 토피아에는 있었습니다. 모두 열심히 하는 분위기로 말입니다.

누가 공부를 제일 좋아한다고 할까요? 공부가 제일 재밌다고 누가 그럴까요? 그러나 토피아에선 공부를 해야겠다는 분위기가 만들어지면 공부를 하게 되고, 공부를 하면서 알아가는 기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강압적이지 않고 스스로 공부하게끔 만드는 게 토피아학원에서 느낄 수 있는 큰 장점이었던 같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흐트러지지 않게 이끌어주신 부모님과 토피아 선생님들께 많이 감사드립니다.

강태규송파중

대원외고

처음 토피아에 들어왔을 때 저는 외고에 대한 꿈만 많던 학생이었습니다. 하지만 토피아는 저의 꿈을 이루게 해 주었습니다.

솔직히 여기까지 오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처음 배우는 과목들도 많았고, 다른 아이들에 비해 실력도 많이 떨어져서 처음에는 좌절도 많이 했습니다. 갑자기 늘어난 수업량에 압도되었고, 그 동안 보지 못했던 언어/사회 문제에 겁을 먹었습니다. 그 때 공부 방식을 잡아주시며 여러 가지 조언들을 해주시던 선생님들이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특히 당시 담임 선생님이셨던 이진원 선생님께서 처음 들어와 당황하던 저를 다독여 주시고, 열심히 공부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습니다. 그 밖에도 김효진 선생님과 이윤하 선생님, 마지막에 어긋나지 않도록 조언과 응원을 아끼지 않으신 박은영 선생님 모두 저에게 매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외고 입시 시험 날이 가까워질수록 부담은 늘어갔고, 마음은 급해졌지만 학원에서 열심히 가르쳐 주시는 선생님들 덕분에 따로 공부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처음에 떨어지던 LC 실력도 꾸준한 문제 풀이로 점차 오르게 되었고, 전혀 모르던 언어/사회 문제들도 선생님들의 뛰어난 요약과 정리로 개념을 잡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입시 마지막 날까지 옆에서 많은 질문에도 모두 친절하게 답해주셨던 우리의 선생님들이 없었다면 합격은 꿈도 못 꿨을 것입니다. 그렇게 마지막까지 철저하게 준비하였고 또 토피아 선생님들도 도와 주셨습니다.

시험 당일 날, 무거운 발걸음으로 차에서 내린 뒤 대원외고 교문으로 향했습니다. 그러자 눈에 보인 것은, 저를 따뜻하게 맞아주시는 토피아 선생님들이셨습니다. 토피아 선생님들께서는 마지막까지 저에게 힘을 불어 넣어주셨습니다.

최준영경희중

상산고

중학교 3학년 여름방학부터 시작한 상산고 준비, 3개월이라는 결코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그 시간은 아주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중학교 3학년 4월에 처음으로 토피아 학원에 들어왔다. Dsb레벨의 외고반에 들어가게 됐는데 그동안 단과학원을 다니며 1~2시간씩 공부한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5시 30분부터 11시까지 거의 6시간씩 공부를 시켰다. 하지만 갑자기 변한 공부 양에 적응하기 힘들었고 그 결과 모의고사 등수는 끝없이 추락했다. 2~3개월이 지났을 때, 상산고 반이 생긴다는 소식을 들은 부모님께서 상산고반을 권유하셨고 1학기 기말이 끝난 즉시 상산고반으로 옮겼다.

상산고 반 적응은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수학이 어려웠다. 아직 수학 10-가도 제대로 끝내지 못했는데 다른 친구들은 거의 10-가,나 심지어 수 1까지 보고 들어왔다는 것이다. 수학 모의고사만 보면 늘 당황하고 피하고 싶었다. 뒤처진 수학을 만회하기 위해 남보다 먼저 등원해 자습하기 시작했다. 방학때는 거의 학원에 살다시피 했다. 하지만 그 노력에도 수학실력은 좀처럼 늘지 않앗다. 짜증이 나기도 했고 분하기도 했고 수학을 잘하는 애들이 부럽기까지 했다. 그러나 시험을 약 한달 정도 앞두고 수학 문제들이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고, 점수 역시 향상됐다.

시험 D-37일부터는 새벽 3시까지 자습을 하기 시작했다. 내신대비 때 몇번 새벽까지 공부한 경험 빼고는 이렇게 계속 새벽까지 한 경우는 없었다. 처음에는 적응하기 힘들었다. 부족한 수면은 학교 수업 내내 영향을 끼쳤고 결국 학교수업은 거의 듣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학교 수업을 포기한 대신 부족한 수학을 더 할 수 있었다.

D-106이라는 문구가 어느덧 D-20에 왔을 때는 내가 과연 상산고에 합격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에 사로 잡혔다. 시간이 점점 다가오자 유난히 시끄러웠던 친구들도 말 수가 줄어들었고, 남은 시간동안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하여 공부할 수 있었다.

상산고 수학특기자 전형일. 나는 일반전형에 비중을 두던 까닭에 큰 기대는 안했지만 학교 내신 수준의 문제가 나와 내심 기대를 했었다. 하지만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난 1주일 후 있을 일반전형에 다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드디이 일반전형일. 수학, 영어, 국어 순으로 시험을 보았는데 수학문제가 만만치 않아 합격의 길은 점점 멀어가는 것 같았다. 영어 면접의 지문은 약간 쉬웠고, 국어면접에선 쌀쌀맞은 면접관 태도에 당황했지만 한자와 어휘를 다 맞은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상산고 준비를 하며 새벽 2~3시까지 공부하는 게 힘들었지만 친구들과 함께 공부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매우 재미있었다. 더구나 그 시간까지 집에도 가지 않으시고 우리의 수학, 국어 질문을 받아주시던 토피아 선생님들께 매우 감사드린다.

최웅단대부중

상산고

나의 첫 목표는 민족사관고등학교였다. 민족사관고등학교를 준비하기 전 내신 위주의 공부만으로 전교 1등의 기쁨을 만끽하던 나에게 다가온 첫 번째 난관은 수학이었다. 수학 학원에서 나보다 못하는 학생은 한명도 없었으며, 민사고 수학경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보다는 나의 형편없는 수학 실력으로 어떠한 고등학교를 가든 필연적으로 낮은 성적을 받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앞섰다. 나는 선생님이 말씀해주시는 모든 문제를 오답노트에 정리하면서 한 장씩 공책을 채워가며 친구들이 푸는 문제집을 보고 그 것들을 모두 사서 스스로 풀어보았고 조금은 향상된 수학실력에 어느 정도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

수학경시대회가 끝난 뒤 내가 다니던 수학 학원 대부분의 아이들은 토피아에 가게 되었다. 외고입시로 잘 알려진 학원이 과연 민사고 대비를 잘 할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막상 수업을 들어보니 나에게 맞는 학원을 찾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의 매일 정규 수업이 끝나고 자습 시간에는 늦게 까지 남아 공부했는데 같이 남아주시는 선생님들께 감사하고 죄송스런 마음에 더 열심히 하였다. 더구나 나는 IBT점수도 다른 학생에 비해서 낮았기 때문에 남들보다 더 노력해야 했고 학원에서도 뒤처지지 않도록 필사적으로 공부하였다.

항상 힘들 때 마다 윤원영 선생님께서는 마치 정신적 버팀목처럼 위로해주시고 신경 써 주셨다.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은 없다. 다만 힘들 뿐이다' 라는 좌우명을 되새기며 불안한 마음을 잠재웠지만 수 개월간 노력해온 대가는 냉혹했다. 민사고 응시 결과 '축하합니다' 라는 말 대신 '죄송합니다'를 보고 말았던 것이다. 언제나 곁에 계신 부모님과 선생님들께 죄송한 마음이 들었지만 포기하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불합격의 충격을 잠시 뒤로 한 채 나의 진로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던 도중 윤원영 선생님의 전화를 받고 전주 상산고등학교에 대한 정보를 얻었다. 예전부터 국내 대학 진학에 유리한 학교라는 것을 알고 있어서 생각할 틈도 없이 나는 상산고들 준비하기로 하였다. 또 다시 실패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없지 않았지만 2주 정도의 시간 동안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학원 다닐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았기에 나는 토피아 선생님께 문제를 받아 짧은 기간 동안 상산고등학교를 준비하였지만 아쉽게도 20:1의 특기자 전형 경쟁률을 뚫지 못하고 불합격하였다. 두 번째 실패는 맛 본 나는 일반 전형은 기필코 합격한다는 다짐을 하였고 나의 다짐대로 일반전형으로 상산고등학교에 합격하였다. 한 달 만에 실패와 성공을 함께 겪으며 '나'에 관해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민족사관고등학교의 불합격에 좌절하여 모든 것을 포기하였다면 지금의 합격도 없었다.

모든 사람이 일을 시작하면 70%까지는 비슷하게 처리하지만 대부분은 여기서 포기하고, 30%를 채우는 사람만이 성공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 돌이켜보면 국내 대학을 목표로 하는 나에게는 다행일지 모른다. 실패가 있었기에 상산고등학교의 합격이 더욱 값지게 느껴진다. 끝으로 부족한 나를 이끌어 주신 부모님과 선생님들께 감사드린다.

최기정중계중

상산고

나는 상산고에 영어특기자로 합격하였다.
처음엔 상산고가 어떤 학교인지, 어디에 있는지 아무것도 몰랐었다. 하지만 사촌오빠가 시험을 본다고 해 처음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 후 상산고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된 뒤 그 학교에 더욱 끌리게 되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상산고를 가겠다고 마음먹고 공부한 것은 한달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나는 9년 전 미국에서 1년, 3년 전 캐나다에서 1년 모두 2년을 외국에서 지낸 경험이 있기때문에 다른 누구보다도 영어에서는 뒤처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내가 준비한 영어특별전형에서는 내신, 공인점수, 에세이, 스피킹 이렇게 4가지를 평가하는데, 내신을 제외하면 이중에서 공인점수가 무려 70%를 차지한다. 따라서 아무리 에세이를 잘 쓰거나 스피킹을 유창하게 해도 공인점수가 낮으면 합격할 확률이 낮다는 것이다. 나는 내신점수가 좋지 않기 때문에 높은 공인점수를 받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2학년 때 본 토플 점수와 3학년 여름방학 때 본 텝스점수가 있었지만 조금이라도 더 높은 점수를 받기위해 원서접수 바로 전까지 텝스를 치고 높은 점수를 받았다.

공인점수를 따낸 후 나는 본격적으로 에세이 준비를 시작하였다. 예전에 토플을 준비하면서 에세이를 많이 써봤고, 또 글 쓰는 것을 좋아해 에세이 준비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에세이는 많이 쓸수록 실력이 느는 것이므로 시험보기 전까지 2주 동안 매일매일 한,두편 씩 썼다. 이렇게 쓴 에세이를 토피아 선생님께서 읽어보시곤 더 나은 단어와 아이디어를 제시하며 수정해주셨다. 스피킹 준비 역시 영어로 말하는 것을 좋아하고 또 평소 미국드라마를 보면서 영어에 대한 감각을 잃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 힘들지 않았다. 선생님과 에세이를 고칠 때나 평소에 대화할때도 영어로 말을 해 스피킹은 자신이 있었다.

영어특기자는 수학특기자에 비해 뽑는 인원이 적으므로 변별력을 지니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상산고는 다른 특목고에 비해 내신을 더 많이 보므로 내신관리가 매우 중요하지만, 영어특기자 전형에서는 내신이 조금 떨어지더라도 공인점수로 충분히 만회할 수 있다. 따라서 열심히 공부해 텝스나 토플에서 남들보다 뛰어난 점수를 받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나는 상산고에 합격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내년부터 상산고 학생이 된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설렌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그곳에서 나는 내 꿈을 마음껏 펼쳐 자랑스러운 상산인이 되고 싶다.

조은혜강북중

상산고

초등 6학년 여름방학. 아무것도 모른 채 토피아 입학시험을 보게 되고, 민사반에 합격하게 되었다. 중 1 막바지부터 본격적으로 민사고를 준비하게 되었고, 그래서 토플, 국어인증, 민사수경 등 다양한 공부를 할 수 있었다. 상산고에 합격하기까지 이 세 가지가 가장 큰 도움이 되었다.

우선 토플을 통해 영어 실력을 다져왔기 때문에 영어는 어려움이 없었다. 처음 토플을 접하게 된 것은 2학년 초, 모의고사를 통해서였다. 그 시험에서 나는 꼴찌였다. 지금까지 '꼴찌'를 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많이 당황했고 많이 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선생님들께서 할 수 있다며 격려해주셨기 때문에 좌절하지 않았고 '꼴찌'인 만큼 남보다 더 열심히 했다. 또한 한창 토플을 준비할 무렵이 선배들의 민사고 영판의 시기와 맞물려 새벽 4-5시까지 학원에 남아서 공부할 수 있었다. 그 때만큼 열심히 한 적도 없었던 것 같다. 그 결과 나는 첫 토플 시험에서 만족스러운 점수를 얻어냈고, 그 뿌듯함 덕에 더 열심히 할 수 있었다. 이 때의 노력 덕분에 상산고 입시 중 영어에서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수학 역시 민사수경을 준비하면서 많이 다질 수 있었다. 민사수경은 1년에 단 한번 열리는 시험이기에, 3월말까지 토플을 했던 나로서는 조금 버거운 관문이기도 했다. 4월부터 6월까지 2개월 동안 수학실력을 향상시켜야 했기에, 나는 남들보다 더 열심히 할 수 밖에 없었다. 토피아 교재인 I.A 대수, 기하, 그리고 선생님께서 나누어주신 프린트를 풀고 열심히 오답노트를 만들었다. 윤원영 선생님께서 오답노트의 중요성을 끊임없이 강조하셨고, 민사수경을 준비하는 과정 속에서 나 스스로도 그 중요성을 절실히 느꼈기 때문이었다.

상산고를 준비할 때에도 그 당시에 만들어놓았던 오답노트 위주로 공부를 하였다.

상산고 준비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과목은 국어였다. 수학, 영어처럼 오랜 기간 국어를 공부해오지 않았고, 어릴 적 책을 많이 읽은 편이 아니었기에 내 국어실력은 많이 부족했다. 하지만, 상산고 입시의 국어 유형이 교과서 내용이었기 때문에, 교과서를 중심으로 공부했고, 토피아에서 나누어준 프린트를 꼼꼼히 읽었다. 상산고 입시를 준비한 기간은 겨우 2주였지만, 6학년부터 토피아에서 다져놓은 영어, 수학 실력 덕분에 큰 어려움 없이 치를 수 있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토피아를 다닌 덕을 톡톡히 본 것 같다. 어려움도 많았지만, 선생님들과 친구들의 도움 속에서 내 자신이 성장하는 것을 느꼈기에 만족스러웠고 뿌듯했다. 또한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상산고에 입학해서도 스스로 부족한 점을 깨닫고, 그것을 메울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김형진한천중

상산고

처음 상산고등학교에 대해 관심이 생긴 것은 학교에서 받은 적성검사에서 이과 성향과 문과 성향이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였다. 당시 그냥 일반고를 가자니 아쉽고 그렇다고 문과나 이과 중 하나를 확실히 정한 것도 아니었다.
고교 1학년 때 문과와 이과 수업을 함께 들으며 이후 진로를 선택할 수 있는 자사고와 민사고를 고민했었다.

하지만 민사고는 오랫동안 준비해온 아이들이 많아서 엄두가 나질 않았다. 이 때 상산고를 알게 된 나는 마침 토피아에 상산고반이 신설됨에 따라 본격적으로 입시 준비를 시작했다.

외고반에서 상산고반으로 들어갈 때 치른 시험에서 나는 턱걸이로 입학했다. 처음에는 영어, 수학, 국어 성적이 모두 그저 그랬고 난 그것에 대해 약간 실망스러웠다. 지금까지는 어디를 가든 눈에 띄는 우수한 성적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대로 무너질 수는 없다는 생각에 집에서 악착같이 수학공부를 했다. 다행히 조금씩이지만 수학 성적이 조금씩 오르기 시작했다.

이 무렵, 여름 방학이 찾아왔고 아침부터 학원에 가야했다. 종합반에 다니기 시작한 지 네 달밖에 안 된 나에게는 너무나도 혹독한 시간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장시간의 학원생활이 익숙해졌지만 매우 지루했고 수업내용도 머리에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게 방학을 보내고 나니 수학과 어휘/어법 외에는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다.

시간이 흘러 9월이 가고 민사고에서 떨어진 아이들이 합류하기 시작했다. 이 때부터 새벽까지 남아 공부를 했다. 처음에는 자습시간이 자습시간이 아니었다. 떠들고 웃고 장난치다가 윤원영 선생님께 혼나고……. 그러다가 특별전형 2주전, 갑자기 정신이 들었다. 생각해보니 부족한 게 너무 많았고 불안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공부를 시작하려니 무엇을 먼저 해야 할지 몰라 무작정 수학문제만 풀었다. 선생님께 부탁드리고 교무실에 있는 문제집도 복사해서 풀어보았다. 다른 아이들이 국어와 영어를 골고루 하는 동안 나는 수학특별전형에 모든 것을 걸었다. 처음에는 일반전형 쪽에 가까웠지만 이때쯤 되니 수학특별전형이 아니면 떨어질 것만 같았다.

마침내 특별전형을 보게 되는 날, 온갖 어려운 문제들을 상상하며 시험지를 받았지만 막상 받아보니 황당할 정도로 난이도가 낮았다. 그래서 가볍게 풀었더니 가볍게 떨어지고 말았다. 특별전형에서 떨어지고 나니 더 큰 불안감과 초조감이 나를 둘러쌌다. 일반전형 1차 서류심사는 간신히 통과했지만 그동안 영어와 국어 공부를 거의 안 하다시피 한 나에게는 치명적이었다.

일반전형 전날 전주에 내려가 수학기출 문제를 풀어보았다. 그리곤 ‘ 이렇게만 나온다면 풀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곽수진 선생님께서 챙겨주신 시를 몇 편 읽었으나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았고, 다음날 시험을 보기 위하여 잠을 청했다.

다음날, 6시쯤 일어난 나는 왠지 모를 자신감이 생겼다. 1교시 수학시험의 3번 문제가 꺼림칙했지만 시간이 별로 없어 검토를 못하고 면접실로 갔다. 면접관 선생님이 3번 문제를 보더니 실수를 했다고 했다.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영어시험과 국어시험을 볼 때도 어떠한 추가질문도 받지 않았다. 마음속으로 계속 절망하던 나는 마지막 인성면접을 보기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내 차례를 기다리고 있던 중, 한 선배가 내게 긴장하지 말라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어느 샌가 난 긴장하며 두 주먹을 꽉 쥐고 있었다. 그 때만큼 긴장한 적이 또 있었을까? 인성면접을 무난히 보고 난 뒤 마음이 개운하지 않았다.

시험은 다 끝났는데 예상외로 실수를 많이 해서 마음이 무거웠다.

서울로 돌아온 뒤 별로 기대를 하지 않은 채 기말고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행운의 여신은 나의 손을 들어주었다. 시험을 본지 이틀 후 선생님으로부터 합격 메시지가 왔다. 처음에는 믿기지 않아 전화를 해보고, 마침내 상산고 홈페이지에서 확인을 하는 순간, 그때까지의 모든 안 좋았던 것들이 마음속에서 사라졌다. 나는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김은지중원중

상산고

난 초등학교 때부터 수학을 중심으로 공부했다. 그때 당시에는 과고가 목표였다. 그러나 중학교 1학년 말부터 놀기에 재미를 붙인 나는 정신없이 놀기 시작했다. 내신도 안 챙기고 공부는 뒷전이었다. 같이 공부하던 친구들은 모두 실력이 오르고, 과고 준비에 바빴다. 그런 친구들 사이에서 항상 바닥을 맴돌던 나는 완전히 과고를 포기했다. 놀기에 정신이 없었지만 그래도 ‘과학고’라는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공부를 손에서 놓지는 않았다. 하지만 목표가 사라진 후부터는 정말 공부를 놓아버렸다. 학원에서도 맨 뒷자리에서 만화책이나 읽는 등 내 행동은 그야말로 막장이었다.

다시 공부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2학년이 끝날 무렵이었다. 그러나 공부를 시작하기엔 정말 힘들었다. 혼자서 하기에는 너무 버거워 토피아 외고반에 들어갔다. 영어와는 담쌓은지 오래인 나는 외고반에 적응도 잘 못했고 성적도 밑바닥을 돌았다. 외고를 목표로 하기엔 영어에 너무 흥미가 없어 다른 학교를 알아보았다.

이렇게 선택한 학교가 상산고이다. 영어보다는 수학이나 과학에 흥미가 많은 나는 상산고가 가장 적절한 학교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2월에 설명회도 갔다오는 등 열심히 알아보았다. 나에게 다시 목표가 생긴 후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외고반에서 영어에 치우친 수업을 하다보니 내겐 그다지 흥미가 없었다. 외고반 담임선생님께서는 내가 수학에 흥미가 있으신 걸 아시고는 계속해서 따로 숙제를 내주시고 관심을 가져주셨다. 그러던 중에 상산고반이 생긴다는 말씀을 해주시며 그 반에서 열심히 공부해 꼭 붙으라고 말씀해 주셨다.

토피아 상산고반. 처음에 강의실에 앉아 있는 친구들을 보니 정말 기가 죽었다. 모의고사를 봐도 항상 밑바닥을 맴돌던 나는 공부를 뒤로 한 채 놀았던 것을 정말 많이 후회했다.
그래도 이제부터 하면 되겠지 하는 자신감을 갖고 시작했다. 차츰 친구들이랑 친해지면서 더욱더 자신감을 얻고 공부하면서 흥미도 느끼게 되었다. 수학, 영어, 국어를 준비하면서 수학에 가장 비중을 두고 공부했다. 나는 수학을 뛰어나게 잘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반전형 위주로 공부를 하였다. 처음에 가장 힘들었던 것은 국어. 국어수업에서 말하고 발표하는 것은 소심한 나에게 가장 큰 문제였다. 그러나 계속해서 연습하고 마지막에 모의면접을 하면서 말하는 것이 많이 좋아지게 되었다. 나는 상산고 입시를 준비하면서 정말 열심히 한 것 같다.

난 특기자 전형은 전혀 생각도 안하고 일반 전형을 준비했다. 그래도 특기자 전형 자격이 되니 ‘한번 해보지 뭐’ 라는 식으로 특기자 전형을 지원하고 수학특기자 시험을 봤다. 아무리 기대를 하지 않던 시험이지만 시험지를 보는 순간 손이 떨렸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문제를 푸니 생각보다 쉬웠다. 실수하지 말고 꼼꼼히 보자는 마음뿐이었다.

상산고 입시를 준비하면서 그동안 공부를 안 한 것에 대해 뼈저리게 후회하고, 울고 싶던 날이 많았다. 그래도 결국 ‘정말 열심히 하면 되는구나’ 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다.

김수예동화중

상산고

나는 프랑스에서 4년을 살았다. 프랑스에서 국제학교를 다녔으므로 영어 실력은 좋았지만 수학, 국어 등 다른 과목은 한참 뒤떨어졌다. 그곳에서 중학교 2학년부터 혼자 민사고 입시를 준비하다, 2학년 여름방학 때 두 달간 한국에 들어와 토피아 민사반에 들어가게 되었다. 토플은 그럭저럭 했지만 예상했던 대로 수학이 어려웠다. 그 때 학원수업만 들으며 열심히 공부했고, 두 달후 다시 프랑스로 돌아갔다. 프랑스에 있는 동안 윤원영 선생님께서 이메일로 수학 문제를 꾸준히 보내주신 것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렇지만 주위에 특목고를 준비하는 친구도 없었고 입시 전문 학원 같은 것도 없었기 때문에 혼자서 공부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나는 국어는 과외선생님과, 수학은 혼자서 문제집을 꾸준히 푸는 등 나름 열심히 했다.

어느덧 1년이 훌쩍 흘렀고 난 또다시 토피아 민사반에 앉아있었다. 처음 왔을 때 같은 반 친구들은 모두 엄청 열심히 공부를 했다. 나도 그 분위기에 휩싸여 열심히 했고 못 들은 수업이나 부족한 점은 보충수업을 듣거나 밤 자습시간 때 질문을 하면서 많이 보완했다. 가끔 해이해 질 때면 윤원영 선생님께선 우리가 공부를 죽기살기로 해야할 것 같은 분위기를 조성해 주셨다.

토피아의 가장 좋은 점은 밤에 자습을 하면서 선생님들께 질문하고 싶은 것을 질문하고, 친구들과 함께 공부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렇게 또 세 달이 지나갔다. 그리고 난 민사고 강당에 앉아서 시험을 보고 있었다. 하지만 2차 영판에서 떨어졌고 이것은 몇 시간 동안 내 사기를 떨어뜨렸다.

시험에 떨어진 날 곧장 학원에 와서 윤원영 선생님을 만났다. 내가 이과 쪽 국내 대학을 진학하고 싶다고 하니 상산고를 추천해주셨다. 입시는 겨우 2주 남았다. 영어는 민사고를 입시를 위해 토플을 준비했기 때문에 어렵지 않았다. 수학도 마찬가지였다. 문제는 국어였다. 국어 인증시험 준비를 할 때 어휘, 어법 등을 공부했지만 상산고의 한자 문제와 교과서 지문 위주의 문제와는 또 달랐다.

시험일이 다가왔다. 이번 시험은 무조건 붙어야 된다는 생각과 김혜경 선생님의 ‘한 번에 끝내자’는 말씀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수학과 영어는 잘 봤지만 국어 시험이 끝난 후엔 울 뻔했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못 본 것이었다. 그러나 내가 어려우면 다른 애들도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니 자신감이 생겼다.

상산고 시험이 끝나고 바로 외고 입시를 준비했다. 두 번째 떨어졌을 때는 만반의 준비를 갖춰야 한다는 굳은 신념 때문이랄까. 시험 끝난 이틀 후 외고 리스닝 문제를 풀고 있는데 갑자기 선생님이 축하한다고 했다. 무슨 영문인지 몰라 교무실로 달려갔다.
난 상산고에 내가 먹은 엿처럼 딱~ 붙은 것이었다.

고은아수내중

안양외고

저는 이번 2009학년도 안양외고 신입생이 되는 고은아입니다.

저는 토피아 다니기 전까지 막연한 생각으로 지냈습니다. 남들이 외고 입시를 준비하다고 분주하게 다닐 때에도 저는 될 때로 되라는 식으로 지냈습니다. 그런데 토피아에는 저보다 여러모로 뛰어난 애들이 많이 있었고 저는 비로소 외고 입시가 쉽다는 착각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또한 저는 다른 애들과는 다르게 학원을 중간에 그만둔 적이 있었습니다. 옛날부터 제 꿈은 이과쪽이었고 몇 몇 외고에서 이과 수업을 진행한다고 해 그 학교를 찾아 지원하려고 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가고 싶었던 서울권 몇 몇 학교들이 이과 수업을 없앴다는 소식을 들은 후 의욕은 떨어지고 슬럼프에 빠졌었습니다. 결국 일반고로 진학해 이과로 나가야 겠다고 결심한 뒤 학원을 그만두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안양외고와 고양외고가 이과 수업을 진행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다시 돌아가 경쟁할 자신감도 없었고 무엇보다 힘든 외고 입시를 하기 싫었기에 완강히 반대했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모로 숙고해 보니 안양외고라는 학교가 마음에 와 닿았고 결국엔 다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늦었지만 올바른 학교를 잘 선택하고 공부해 합격한 것 같습니다. 토피아 선생님들께서 안 계셨다면 어려웠을 거예요. 새벽까지 남으셔서 저희 Q&A를 다 받아주시고 하나하나 챙겨주시는 덕분에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습니다.

이병호하탑중

명지외고

올 여름 토피아가 분당에 생기면서 어머니께서 토피아를 추천해 주셨다.
토피아에 가기 전까지 나는 외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무작정 ‘외고에 가야 좋다’고들 하니까 막연히 가고 싶어
했다.
하지만 토피아에 처음 입학한 뒤 나는 깜짝 놀랐다. 지난 수년 간 외고생의 대학 입시 실적이 외고를 가야 하는
이유를 바로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또 한가지 내가 느낀 것은 토피아가 내 꿈을 실현시켜 줄 곳이라는 걸 확신했다.
그동안 먼 거리 임에도 분당에서 대치동의 학원을 다녔었다. 하지만 토피아가 분당에 개원을 한다는 소문을 듣고 과감히
옮기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내 결정이 옳았다는 것은 금세 드러났다.
중계, 강남에서 오신 최고의 선생님들과 공부하니 방학동안 내 실력은 눈부시게 자라났다. 그리고 학기 중에는 학교
내신과 외고 대비를 동시에 잡는 효율적인 시스템 속에서 조금은 힘들지만 너무나 보람된 하루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그렇게 길지도 않고 짧지도 않은 외고 준비 기간 동안 차곡차곡 실력은 쌓은 덕에 너무나 가고 싶었던 명지외고에
합격할 수 있었다. 내 꿈을 실현 시켜주신 박광현 담임선생님, 크리스 선생님, 이위복 선생님, 김미정 선생님 정말정말
감사 드립니다.

임나연내정중

과천외고

저는 2009학년도 과천외고 합격생 임나연입니다.
토피아에 처음 오게 된 것은 강남에서 좋다는 소문 때문이었습니다. 토피아가 들어오기도 전에 이미 소문이 퍼져 있어 입학
시험을 미리 예약해야 할 정도로 많은 아이들이 왔습니다.
저는 입학 시험에서 그다지 높은 반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약간의 실망을 안고 토피아에 입학했습니다. 처음
모의고사를 본 날, 생각보다 많이 어려웠어요. 등수도 많이 낮게 나오고...하지만 다음 시험은 열심히 공부한 결과
등수가 많이 올랐습니다.
토피아는 분당 지역의 잘 하는 애들이 많이 와 학원 분위기가 무척 좋았습니다.
‘자습’이라는 것을 토피아에서 처음 해봤는데 진짜 숨소리 하나 안 들릴 정도로 각자 자기 공부에 열심이었습니다. 내
경우 특별히 열심히 하는 아이가 아니었는데, 다른 친구들의 분위기 덕분에 무척 열심히 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자습이
선택일 때도 학원에서 공부가 잘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항상 학원에 남아서 자습을 했습니다.
영어 독해를 풀 때 평소에 읽는 속도가 느린 나는 초시계로 재면서 풀었는데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시간을 재면서
풀면 빨리 풀어야 된다는 생각에 집중을 더 잘 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평소에 쉬는 시간에 돌아다니다가 선생님들께 항상 혼나고,수업시간에도 다소 산만했습니다. 하지만 토피아에서
친구들과 서로 격려하며 혼자 공부하는 습관을 갖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학원에 나오지 않는 날도 나와서 자습을 할 정도였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토피아에서 가장 도움이 된 건 공부하는 습관을 갖게 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윤혜선서현중

성남외고

저녁에 학원에서 전화를 받았습니다. 합격을 축하한다고. 처음에는 믿지 안핬지만 직접 확인해보니
합격이더군요. 생각해보면 여름방학 때 마음을 다잡고 외고준비를 시작했을 때부터 합격하기까지 나름대로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중학교 3학년 초까지만 해도 학원에 들어가서 열심히 외고 준비를 하겠다는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분당에 새로
생긴 토피아 학원에 들어가 보라는 부모님의 권유로 본격적인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들어가서는 많이 힘들었습니다. 저는 집중력이 약했기 때문에 남들보다 숙제하는 시간이 두배로 걸렸죠. 어휘가
부족해 다른 아이들이 아는 단어도 저는 잘 몰랐고, 리스닝과 리딩도 단어를 몰라 애를 먹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학원에서 나누어주는 단어라도 모두 외우자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역시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 고민하다가 학원 선생님의
조언대로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단어를 외우는 연습을 시작했습니다.(하다 보니 편해지더군요.) 한두 달 지나자 어휘가
많이 늘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언어가 말썽이었습니다. 전체 20~25%로 내내 저조한 언어 성적(학원 모의고사)이, 영어에 치중하다
보니 점점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저의 가장 큰 적이었던 문학 때문이었습니다. TOKL(국어능력인증시험)준비나
토론, 논술의 경험 때문에 언어 어휘나 비문학 성적은 양호한 편이었지만, 문학에 매우 약했습니다. 얇은 수능 문제집을
사서 풀기 시작했습니다만, 그것으로는 성적이 잘 오르지 않았죠. 오답노트는 물론이고 현대시 해석 연습, 언어 문제집을
추가로 한 권 더 풀기를 계속하자 2학기 중간고사가 지나고 나서야 성적이 올랐습니다.
1학기 내신을 잘 보지 못했기 때문에, 2학기 중간고사에서는 내신을 올리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쉬는 시간에 전
시간 내용을 복습했고, 이해가 잘 되지 않는 과학은 틈틈이 들여다보았습니다. 이 때 자투리 시간 활용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학원 숙제를 자투리 시간에 하고, 집에서는 내신에만 집중했습니다. 특히, 제가 약한 수학은 틀린 문제를
5번, 6번씩 외우다시피 풀었습니다. 국어는 자습서 한 권을 통째로 공부했고, 과학은 틀린 문제에 해당하는 부분을
복습했습니다.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 인강을 들었습니다.) 노력한 만큼 성적이 올라서 기쁘더군요.
그러나 제일 힘들었던 때는 시험을 1주일 정도 앞두었을 때입니다. 저는 원래 심지가 굳거나 의젓한 성격이 되지
못해서 시험이 다가오자 문제도 제대로 풀지 못했고, 평소보다 문제를 더 틀리기도 했습니다. 울지는 않아도, 조그만
일에도 절망을 하곤 했습니다. 마지막 이틀은 불안해질까 봐 학원도 쉬었습니다. 그래도 시험 날에는 떨어지면 서울권을
보면 된다고 마음먹고 나름대로 마음을 가라앉혔습니다. 최선을 다했으니 그걸로 됐다고.
외고라고 하면 지레 겁부터 먹는 분들이 있습니다.
외고가 훌륭한 학교인 것은 맞겠지만, 기초만 있다면 누구나 가능한 곳입니다. 내가 가고 싶은 고등학교에 가는 일일
뿐이라고 편하게 마음먹고, 성실하게 공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요.

김병훈하계중

서울과학고

서울과학고등학교가 2009년부터 서울과학영재학교로 전환되면서 국내에 과학영재학교가 2개로
늘어나게 된다고 한다. 이전부터 과학고 진학을 위해 공부해오던 나는 2008년이 되면서 실제로 입시를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원래는 부산과학영재학교에 지원하려 했지만, 서울에도 과학영재학교가 생긴다는 소식에 서울과학영재학교에 지원하게
되었다.

서울과학영재학교는 1차 전형부터 4차 전형까지 4번의 테스트를 거친 후 120명의 신입생을 선발한다고 하였다. 우선
1차 전형은 서류전형으로, 학교에 자기소개서, 추천서, 생활기록부, 영재성 입증자료 등을 제출해야 했다. 추천서는
나에 대해 많이 알고, 그동안 계속 친했던 2학년 때 수학선생님께 부탁드렸고, 자기소개서를 직접 작성했는데 처음에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는 게 많이 낯설어서 학원 선생님께도 여러 가지로 여쭤보았다. 자기소개서에는 이 학교에 지원하게
된 계기와 수상실적을 기재해야 했는데, 수상실적을 기록할 때는 그나마 제일 자신 있었던 수학에 대해 중점적으로 썼고,
다른 수상실적도 빠짐없이 기록하였다. 그렇게 모든 서류를 준비하고, 교장선생님의 직인을 모두 받은 후 서울과학영재학교에
서류를 보냈다.

1차 전형은 무난히 통과하였다. 1차 전형 발표 후 5일 후가 2차 전형이었기 때문에, 1차 전형 합격 여부와는 상관없이
2차 전형 준비를 하였다. 서울과학영재학교에서 2차 전형이 어떤 형식으로 나올 지 정확히는 말해주지는 않았지만, 주위에서는
객관식으로 수학 · 과학에 대한 문제를 5지선다 혹은 7지선다 형식으로 출제할 것이라고 예상하였다. 그래서 우선 하이탑
전권을 정독하기로 했다. 그 전까지 수학, 물리를 주요 과목으로 공부하였고, 화학도 올림피아드를 쳐서 입상한 경험이
있었지만, 생물과 지구과학 분야로는 거의 공부가 되어있지 않아서 우선 생물Ⅰ,Ⅱ, 지구과학Ⅰ,Ⅱ를 먼저 정독하였다.
지구과학은 그 때 서울영재학교 준비를 같이 하던 친구들보다 많이 뒤쳐져있다고 생각하여 지구과학올림피아드를 신청하여
수업도 같이 듣기도 했고, 생물Ⅰ은 ‘하이탑 생물Ⅰ문제집’을 다시 구입하여 5일만에 하이탑 생물Ⅰ과 문제집을 풀기도
하였다. 하이탑을 대충 훑어본 후에는 중학교 과정을 다시 한 번 살펴보았다.

그렇게 준비를 하고 7월 13일에 2차 전형 시험을 치러 갔다. 시험은 영재성 판별 검사, 수학, 과학Ⅰ(물리, 지구과학),
과학Ⅱ(화학, 생물)로 나눠서 쳤는데, 고등학교 교과 과정 이상으로는 전혀 나오지 않아 많이 당황스러웠다. 게다가
문제를 풀 시간도 빠듯해서, 급하게 문제를 푸느라 몇몇 문제에서 실수가 발생하였다. 하지만 다행히도 2차 전형 시험에
합격하여 3차 전형 시험을 칠 수 있게 되었다.
3차 전형 역시 대상자 발표 이후 5일 후에 시험을 쳐야 하기 때문에, 합격여부와 관계없이 대비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3차 전형을 치기 전까지 물리올림피아드(7월 20일)와 지구과학올림피아드(7월 23일) 1차 시험이 있었기 때문에
올림피아드 대비를 하면서 틈틈이 3차 전형에 대한 대비를 하였다. 다행히 21일에 학교 여름방학이 시작되어서 3차
대비와 지학올림피아드 준비를 병행할 수 있었다.
3차 전형은 창의적 문제해결력을 평가하는 시험이었는데, 학원에서나 주변에서나 그동안 부산과학영재학교 2차 전형과 비슷할
것이라고 예상하여 학원에서 주는 수학과 과학에 대한 창의력을 요하는 문제들을 많이 풀어보았다. 그리고 수학이나 과학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 다른 책들을 읽을 만큼 시간이 충분하지가 않아서, 여전히 부족하다고 느꼈던 생물과 지구과학을
다시 한 번 훑어보고 남은 시간에 물리와 화학에서 중요한 부분만 챙겨 보았다.

3차 전형은 7월 26일에 서울과학영재학교에서 치게 되었는데, 수학, 과학Ⅰ, 과학Ⅱ, 글쓰기로 나누어 쳤다. 문제가
난이도가 높고, 게다가 문제 수도 많을 뿐만 아니라 부산과학영재학교와는 문제 형식이 완전히 달랐기 때문에 문제를 받자마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곧바로 안정함을 되찾고 풀 수 있는 문제부터 확실하게 풀었다. 답을 쓸 때는 알고
있는 대로 작성하였고, 할 수 있는 한 논리정연하게 작성하였다. 시험이 끝나고 과연 3차 시험에 합격을 할까 하는
생각을 수없이 많이 했다.
4차 시험 대비 또한 3차 합격 여부와 상관없이 진행되었다. 대치 토피아에서 진행된 4차 캠프 대비는 부산과학영재학교
2차 전형에 합격한 친구들과 함께 그동안 부산과학영재학교 3차 시험 때 했던 것들을 준비하였다. 힘들었지만 실험과
보고서 작성, 연구계획서, 논문 요약 등을 해보면서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대비 과정중에 모의 면접도 한번
봤었는데, 그 때 내가 너무 긴장했다면서 면접관을 무서워하지 말고 집에서 연습하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집에서 혼자 이미지
트레이닝을 굉장히 많이 했었다. 그리고 4차 대비 중에 3차 합격자 발표가 났는데, 같이 4차 대비하던 친구들 중
불합격한 친구들이 나와서 굉장히 마음이 아팠지만, 4차 대비를 계속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4차 대비를 마치고, 서울과학영재학교에 2박 3일로 4차 전형 캠프를 들어갔다. 아쉽게도 4차 대비할 때 했던
내용과는 많이 다른 형식의 시험이 진행되었다. 3차 전형 때 쳤던 시험 유형과 비슷한 시험을 2번 정도 치루고, 구술
면접, 조별 활동, 토론 활동 등을 3일 동안 하게 되었다. 필기 시험을 칠 때는 3차 때보다 창의력을 많이 요구하는
문제가 나와서 풀지 못한 문제도 몇 개 있었다. 또한, 면접 때는 이미지 트레이닝을 한 덕에 떨지는 않았지만 풀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답만 쭉 말하는 형식이라서 당황하였다. 하지만 ‘이 문제는 풀이를 써 왔으나, 답은 구하지 못했습니다.’
라고 솔직히 말하였고, 과학 문제 후에 이어진 인성면접에서도 솔직하게 내 생각을 말하였다. 조별 활동과 토론 활동은
감점 당할 만한 일을 하지 않고, 최대한 활동에 참여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만족할 만큼 시험을 잘 치지 않았기
때문에, 캠프가 끝나고 서울과학고에서 나오면서 계속해서 걱정하였다. 최종합격자 발표가 날 때까지 계속해서 걱정을 하였다.
하지만 걱정 중에 지낸 2주일을 한방에 날려버리고 다행히 합격하여 2009년부터 서울과학영재학교 신입생이 되게 되었다.
그동안 많은 노력과 많은 고비를 넘긴 덕에, 게다가 운까지 더해져 생긴 산물이라고 생각한다. 서울과학영재학교에 들어가서도
가장 최근에 입학 하기 위해 했던 노력들과 고생들을 생각하며 더더욱 열심히 생활할 것이다.

조현진백현중

안양외고

안녕하세요! 안양외고 13기 중국어과 합격생 조현진입니다.

중학교 1,2학년 때도 특목고를 준비하는 영수학원을 다녔지만 뚜렷한 목표나 정확한 정보가 없어 외고를 제대로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중학교 3학년 여름방학에 분당에 토피아가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시험을 본 뒤 다니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자신도 없고 힘들것 같아 다니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내신 성적과 시험점수를 토대로 체계적인 상담을 한 뒤, 열심히 해서 외고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구체적으로 갖게 되었습니다.

토피아에 와서 비로소 각 외고들의 특성을 알게 되고 나에게 맞는 안양외고를 선택해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방학에 무려 10시간동안 학원에 있으면서 처음에는 힘들고 포기하고 싶었지만 하면 할수록 오기가 생겨 더 열심히 하게 되었고, 힘들 땐 친구들이 격려해줘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지칠 때마다 친구들이 열심히 하는 것을 보며 자극을 받아 다시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매주 보는 모의고사를 통해 객관적으로 제 실력이 얼마나 되는지 가늠할 수 있었고, 여러 가지 시험 유형에 익숙해졌습니다.

또 매주 고난도 문제 등 다양한 기출문제를 풀어보며 자신감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 덕분에 실제 시험을 볼 때 많이 긴장하지 않고 볼 수 있었습니다.

포기하고 싶어질 때마다 힘이 돼 주신 토피아 아카데미 분당본원 한용수 담임 선생님을 비롯해 항상 열과 성을 다해서 가르쳐 주시고 격려해주신 모든 선생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변지영내정중

외대부속외고

내가 외고를 가겠다고 마음먹은 건 중학교 1학년 때이다. 막연히 ‘가고 싶다’ 고 생각은 했지만, 무엇을 어떻게 공부하며 어느 정도의 실력을 갖춰야 하는지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유학경험이 없는 나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영어실력이었다. 특히 부족한 건 어휘력이었는데, 항상 귀찮다고 미루다보니 막상 필요할 때 머리에 정확히 남아있는 단어들이 많지 않았다.

나중에 느낀 것이지만 모든 언어능력의 기본은 어휘이다. 단어 외기를 좋아하는 학생이 많지 않겠지만, 미루지 말고 하루에 조금씩이라도 외며 어휘실력을 쌓는 것이 좋다. 그리고 이 어휘를 잊히지 않는 ‘내 단어’로 만들기 위해선 반복이 필요하다. 다 외웠다고 생각했던 단어들도 몇 주 후에 보면 새롭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본격적인 외고준비는 3학년 여름방학에 토피아에서 시작했다. 이때부터는 그동안의 실력을 완성하자는 생각에 계획적으로 공부하게 되었다. 문법공부는 초등학교 때부터 계속 해왔기 때문에 수월했다.

학원에서 배운 것을 토대로 시중 문법책을 사 평소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골라서 공부했다.

독해는 속독을 많이 연습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속독을 하자니 빨리 읽는 데에만 집중하게 돼 내용이 이해되지 않아 힘들었다. 그래서 처음엔 천천히 읽어가면서 하나의 글이라도 정확히 파악하는 연습을 했다. 단순히 글에 적혀있는 주제문, 흔히 첫 번째 문장을 밑줄 쳐 파악하는 것보다 문단별로 전체 문단을 아우를 수 있는 핵심문장을 내가 직접 정리하고, 마지막에 전체적인 주제도 따로 정리 하는 게 효과적 이었다.

그렇게 연습을 하다보면 나중엔 따로 정리하지 않아도 머릿속에 글 전체내용이 체계적으로 그려졌다.
이 연습이 끝난 후엔 글의 길이에 따라 시간을 맞춰놓고 빨리 읽는 것을 연습했다. 혼자 공부할 때 좀 짧다 싶을 정도로 시간을 맞춰놓고 문제를 풀었는데, 계속 그 시간에 맞춰 읽게 돼 실력이 빨리 늘게 된 것 같다.

듣기영역은 처음엔 익숙하지 않아 많이 힘든 부분 중 하나였다. 듣기를 할 때에는 시험을 본다는 생각으로 한 문제 한 문제 최선을 다해 집중해 듣고, 틀린 문제들의 공통적인 유형을 파악해 그 부분에 중점을 두고 공부하는 게 좋다. 준비하면서 정말 중요하다고 느낀 것이 바로 구어체 표현이다. 우리나라와는 다른 문화이기 때문에 외우지 않으면 그 뜻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나는 외고준비를 시작한 처음부터 듣기문항에 나오는 구어체 표현들을 작은 노트에 정리해놓고 학교나 학원갈 때 틈틈이 외웠다. 이런 구어체 표현들은 무작정 외우는 것보다는 자꾸 들으면서 그 어감을 귀에 익혀가며 외우는 것이 좋다.

언어영역은 우리나라 말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가장 어려워했던 부분이다. 가장 힘들었던 부분이 처음 보는 시를 정확히 해석하는 것이었는데, 나는 시 해석을 담은 책을 하나 사서 틀린 문제들에 나온 시들을 정리해 나갔다. 보통 자주 출제되는 시가 정해져 있는데 이렇게 하나하나 정리를 해가니 나중에 같은 시가 나왔을 때 자신감을 가지고 풀 수 있게 되었다. 또 자꾸 다양한 시들을 공부하다보니 그 시인의 특징, 시대의 특징 등을 알 수 있게 되어 새로운 시를 접했을 때 당황하지 않게 되었다.

비문학은 그 내용이 과학, 사회, 예술 등 모든 분야에서 출제될 수 있기 때문에 한번 풀게 된 지문은 그냥 넘어가지 말고 그 분야를 공부한다는 생각으로 다시 읽어보는 것이 좋다. 어법도 영어문법 못지않게 어려운 부분인데 나는 같은 부분을 몇 번이고 반복해 익숙해 질 수 있게 했다.

외고준비를 하면서 성적이 나오지 않아 절망하는 친구들을 많이 봤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노력은 언젠가 보답을 하기 마련. 외고를 가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누구나 한번쯤 겪는 힘든 시간이 있지만,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달려가는 사람이야말로 성과를 거둘 것이라고 믿는다.

혼자였다면 정말 힘들었을 시간들에 항상 응원해주시고 다시 일어서게 도와주신 토피아 선생님들께 정말 감사드리고, 그동안 매일 만나며 함께 웃고 울었던 친구들도 모두 좋은 결과 있길 바란다.
모두가 너무 그리울 것 같다. 모두 너무 감사드려요 !!!!!!

노영주수지중

외대부속외고

저는 토피아에 다니기 전까지만 해도 외고라는 막연한 목표만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중학교 3학년 여름방학 분당에 토피아가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어머니의 권유로 시험을 보게 되었습니다. 시험결과는 그 때까지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은 만큼 좋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의 시험성적과 내신을 바탕으로 체계적인 상담을 해주신 크리스 선생님 덕분에 외고에 도전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때부터 저는 목표를 향해 열심히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실력을 향상시키기 어려웠던 과목은 L/C였습니다. L/C는 단기간에 실력이 늘지 않기 때문에 방학 때 매일 CNN뉴스를 2배속으로 들은 게 많은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또한 철저히 모의고사 오답노트를 만들어 틀린 원인을 찾다보니 갈수록 점수를 높일 수 있었습니다.

학교에서나 학원 등하원 할 때 틈틈이 외웠던 단어는 저에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또한 R/C는 제시간에 푼 문제수와 실력이 비례한다는 것을 알고 토피아가 끝나고 집에 가면 꼭 100문제씩 추가 문제집을 풀었습니다. 메가스터디, EBS, 새롬N제 등 수없이 많은 문제집을 풀고 나니 실력이 조금씩 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Grammar는 여태까지 풀었던 문제집을 철저히 복습하고 마지막 정리로 특강을 들었던 것이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만의 노트를 만들어서 비슷한 어휘나 헷갈리는 문법을 정리했습니다.

언어는 평소에 책을 좋아해 많이 읽었던 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또 마지막 준비로 풀었던 토피아의 자체교재 언어 문제집은 실력을 쌓을 수 있는 보탬이 되었습니다.

힘들 때 옆에서 격려해주시고 보살펴 주신 담임 한용수 선생님 덕분에 힘든 시간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또한 외고 언어를 준비해 본 적이 없었지만 석종필, 최성민 선생님 덕분에 많이 늘었습니다.

비록 이번 입시에서 사회과목은 시험을 보지 않았지만 서울권 외고를 대비해 들었던 이상혁 선생님의 통합사회과목도 사고력을 기르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외대부속외고를 갈 수 있게 탄탄한 영어실력을 만들어 주신 송현주, 임영아, 김은재, 안미영, 김현숙, 장영은, 최선하 선생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마지막까지 토피아를 믿고 따라간 것이 제게 좋은 결과를 주었습니다.

김우현이매중

외대부속외고

토피아와 나의 인연은 1년 전 교육의 메카인 대치동 토피아에서 시작되었다. 지난해 겨울방학부터 대치동 토피아에 다니면서 정체되어 있던 나의 영어실력이 몇 달 후 조금씩 쌓여가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그 즈음 분당에 토피아가 개강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매일 운전을 하시는 어머님의 수고로움을 덜 수 있어 좋았고 시간을 절약할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특별한 목표 의식 없이 학원을 다니던 나는 분당 토피아에서 새로운 도전의식이 생겼다. 그건 바로 ‘외고’였다.

학원을 대치동에서 분당으로 옮기면서 학원에 대해 ‘반신반의’ 하는 나의 불안한 마음을 분당 토피아가 깨끗이 해결해 주었다. 발전하는 영어 실력을 보면서 분당 토피아를 신뢰 할 수 있게 되었다. 객관적인 나의 영어 실력 평가와 그에 알맞은 영역별 영어학습치료(?) 는 나에게 ‘용기’를 주었고 ‘열심히’라는 단어를 연상케했다.

열정적인 선생님의 수업은 늘 그 자리에 머무르고 있는 나의 영어 실력을 한층 더 올려주었고, 특히 토피아 ‘박광현 선생님’의 이해하기 쉽게 때로는 냉철한 수업과 따스한 마음은 나에게 멘토로서의 역할로 다가왔다.

누군가가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 라고 얘기했던가. 열매의 단 맛을 나에게 알게 해 주고, 길잡이를 해 주신 분당 토피아와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꼭 전하고 싶다.

최지아온곡중

민사고

공부에 매달려야 붙는 거라고?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이 말에도 어김없이 예외는 있다. 그 예외가 바로 나였던 것 같다. 내 경우에는 공부를 열심히 하는 편이 아니었다. 기본 태도 자체가 ‘빈둥빈둥’이었다. 특히 가장 문제였던 것은 잠이 보통 아이들보다도 많다는 점이었다. 입시 중이면서 집에 가면 왜 그렇게 졸리던지 바로 자버리곤 했다. 집에 가서도 책을 펴는 건 거의 해본 적이 없다. 거기에다 학교에서도 수업 내내 푹 자고 왔다. 그 뿐인가. 집에 오면 ‘낮잠’이랍시고 또 잤다. 그 ‘낮잠’을 즐기느라 학원 수업에 늦은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래서 항상 나는 공부를 ‘해볼’ 시간이 부족했다. 남들보다 머리가 나쁜 주제에 잠을 줄여가며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녀석이, 오히려 잠을 남들보다 더 잤으니 말 다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공부를 시작했다하더라도 오래 가만히 앉아 공부를 하는 것이 습관이 안 되어있어서 자주 돌아다니다 걸려 혼나기 일쑤였다. 서류를 낸 다음이건, 영판 직전이건 별반 달라지지 않는 이놈의 ‘빈둥거림’은 결국 상담으로 이어지기 마련이었지만. 긴장하는 것도 그 때뿐 사실 달라지지 않았다고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나도 민사고가 잠이나 자고 놀고 있다가 툭 치면 날 들여보내줄 곳은 아니란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빈둥거리는 것을 그만둘 의지도 내게 별로 없다는 것도 알았다. 대신 남들보다 내가 훨씬 많이 가진 것을 이용하기로 했다. 그것이 바로 ‘배짱’, ‘자신감’이었다. 지금도, 합격으로 갈 때 가장 도움이 되었던 것이 이 ‘무턱대고 들이대는 배짱’이라고 확신한다.
사실, 나도 쓴 맛을 본 적이 있다. 꽤나 잘 봤다고 믿었던 토플이 95점이라는 한심한 점수를 준적도 있었다. 쉽게 좋은 결과를 내리라고 생각했던 민사고 국어토론대회에서는 같이 나간 아이들 중 나만이 빈손으로 돌아와야 했다. 그 아이들이 앞에 나가 상을 받는 순간을 차마 쳐다볼 수 없었다. 그 분함과 씁쓸함이 정말이지 역겨울 지경이었다. 결국은 인사도, 축하도 하지 않고 서울로 먼저 올라와 버릴 수밖에 없었다. 화학 올림피아드에 나갔을 때도 기대 이하의 성적이었다. 그 때도, 빈손이었다. 하지만, 이 실패들도 나를 오래 잡아 두지는 못했다. 딱 하루. 하루만 기다리면, 항상, 도를 넘어선 내 ‘배짱’이 단 한마디로 패배감을 ‘폭파’시켜 주곤 했다. “괜찮아, 괜찮아. 민사고만 붙으면 되는 거 아니야.” 그래, 대회 몇 개 놓쳤다고 흔들릴 필요 없다. 그걸 누가 기억하는가. 사람들은, 합격인지 아닌지, 그것만을 알아준다.

‘배짱’은, 내가 끊임없이 입시를 즐기게 하는 힘이었다. 보통은 대회결과를 기다릴 때나, 합격을 기다릴 때, 며칠 전부터 긴장한다. 하지만 내 경우에는 조금 달랐다. (물론 긴장을 안 했다고는 못한다. 몇 시간 전부터는 했었으니까.) 나는 긴장하는 대신 돈을 걸었다. 입시는 나 자신을 걸고 하는 내기가 아닌가. 내기는 스릴 있어야 하는 것이고, 즐길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결과에 대해 내기를 걸고 다녔다. ‘배짱’에서 나오는 이런 행동은, 내가 좀 더 즐겁게(?) 결과를 받아들일 준비를 하게 해주었다. 그러고 보면 나는 실제로 민사고에 가서 면접을 볼 때 그다지 떨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편하기까지 했던 것 같다. 아마 그것이 제일 합격에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인생을 살아갈 때는 최악의 경우를 생각하고 대비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입시에서는 최고의 경우를 생각하고 지내야 한다. ‘지나친 자신감’으로 무장하고 ‘배짱’으로 들이대며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믿으면, 세상도 별 수 없이 내 손을 들어준다.

한재연잠신중

민사고

민사고는 다른 고등학교들보다도 굉장히 많은 시험들을 봐야하고 그 시험에서 좋은 결과를 내야하며 서류 합격 후에도 인문사회 분야나 수,과학 분야 중 한 분야만이 아닌 여러 분야에서의 시험을 위한 공부를 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전문성 면접, 인성 면접과 중학교 생활 동안의 특별활동, 임원 활동, 예체능 활동 등 다방면에서 우수한 학생을 원하기 때문에 그 준비 과정이 매우 어렵고 힘들게 느껴진다. 무엇보다 모든 분야에서 특출한 재능을 자랑하는 일부 학생을 제외한 대부분의 준비생들은 자신의 강점보다 각 분야에서 자신을 능가하는 실적과 재능을 가진 친구들을 보며 절망감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친구들 역시 어느 분야에서는 미흡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오히려 입시를 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치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단 한 번도 외국에 나가본 적도(부끄럽게도 초3 때의 제주도 방문이 내 비행기 경험의 전부이다), 중학교 3학년이 되기 전까지는 수학 학원의 정규반을 한 달 이상 다녀본 적도 없다. 중학교 내신 역시 전교 1등이나 2등이라는 자리에 올라본 적이 없다. 게다가 과학은 정말인지 심도 있는 공부를 해본 경험이 없는 정말 다른 사람들이 보면 평범하기만 한 학생일 뿐이다. 하지만 확실한 목표를 갖고 있다면 정말로 짧은 시간 안에 많은 것을 이뤄낼 수 있으며 하루에 한 번이라도 자신이 미래에 되고픈 이미지를 마음속으로 상상한다면 한두 달 만에 자신이 그 모습이 될 수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민사고를 생각하게 된 것은 내가 중학교 3학년이 되는 겨울방학 때부터였다. 이왕 고등학교에 갈 것이면 내가 정말 선망하는 학교를 목표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는 토플시험 경력이 한 번도 없는 상태였고 국어인증은 무슨 시험인지도 모르는 상태였다. 민사고 수학경시 역시 어떤 유형인지, 영판엔 무슨 과목이 있는지 아무 것도 몰랐다.

다만 난 어렸을 때부터 정말 영어 책과 테이프를 많이 읽고 많이 들었고 외국 경험이 있는 아이들에게 뒤지는 것이 너무나도 싫었다. 토플 전문 학원에서 한 달 반 가량 영어 공부를 했더니 원하던 점수까지는 아니더라도 토플 112점을 받게 되었다. 국어 인증은 1월과 3월 모두 5급을 받아 5월에는 약 열흘 동안 집중공부를 하여 국어 인증을 165점(3급)을 받게 됐다.


3학년 1학기에 가장 매진한 것은 수학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중학교 과정까지 모두 끝내고 중1때 고난도 수학, 최상위 수학, 라인업 6권 등을 집에서 풀었던 것 같다. 2학년 때 KMO를 12%로 상을 받지 못해 아쉬웠는데 우연히 같은 반 친구는 은상을 탔고 실망감에 일 년 동안 수학 공부를 전혀 하지 않았다. 학교 수학 시험마저 좋은 점수를 받지 못했다. 이런 상태에서 민사수경 모의고사를 보니 점수가 너무 낮아 걱정했는데 KMO 장려상이라도 받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동시에 나의 토플 점수가 높은 편이 아니기 때문에 수학경시의 높은 등급을 받기위해 노력했고 동상을 받게 되었다. 또한 경험을 쌓기 위해 나간 국어 토론 대회에서 뜻밖에도 은상이라는 성과를 거두어 매우 뿌듯했다.

영판에서는 과학 공부가 무척 힘들었는데 그래도 과학동아, 뉴튼 등의 과학 잡지를 읽은 것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또한 토피아 과학 선생님들께서 너무너무 열심히 가르쳐 주셨고 친구들이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며 공부했기에 좋은 성과를 낸 것 같다, 또한 논술 선생님들의 첨삭, 여러 차례의 모의고사, 상담, 수학 공부 등 추석 연휴마저 바친 우리의 공부와 선생님들의 지도가 토피아 강남 캠퍼스에서 서류 통과 12명 중 10명이나 합격하는 기적을 이루어낸 것 같다. 민사고 합격생들 중에서는 입이 벌어질 정도로 잘하는 친구들도 있지만 나처럼 단순한 노력으로 이루어진 친구들도 있다. 하지만 그런 단순한 노력도 그 속에 꿈과 열정이 담겨있다면 놀라운 힘을 발휘할 수 있음을 내년에 민사고에 도전하는 친구들도 알았으면 좋겠다.

김주희대왕중

외대부속외고

황사의 봄, 정말 미치도록 더운 여름, 환절기마다 찾아오는 비염. 만성 비염 때문에 늘 훌쩍이고, 약만 먹으면 너무 졸려 나도 모르게 잠들어 버린 날이 꼭 먼 일같이 느껴진다.

어느새 입시 날이 왔다.
새벽1시 자습이 이렇게 짧게 느껴지다니,
진종일 학원에서 집에서 공부만 하는 것 같은데도 해야 할 공부가 너무 많았다. 못다한 공부가 더 많고 아직 시작도 못한 어법이 나를 괴롭혔다.

하루 종일 자도 부족한 잠이 나를 시시탐탐 유혹하고, 나보다 성적이 좋은, 엄마 친구 아들의 등수가 나를 압박했다. 성적 좋은 친구들의 등수를 볼 때 마다 한숨만 팍팍 나왔다. 토피아에 다니는 엄마 친구와의 전화통화에서 “아무개는 듣기가 몇%고 상위등수는.........” 반대로 오르락내리락 하는 등수 그래프에 한숨만 나왔건만 정말 스트레스가 팍팍 쌓였다.

그렇게 길고도 먼 입시길이였는데, 이제는 달콤한 합격의 기쁨을 누리는 여유가 생겼다. 노는 것 보다는 학원가는 것, 공부하는 것이 일상같이 느껴졌다. 지칠 때마다 토피아 담임선생님께서는 ‘붙는다고 확신한다’는 말 한마디가 큰 용기를 주었다.

나는 나를 믿고 선생님을 신뢰했다. 부모님도 나를 믿어 주셨다. 처음에는 그냥 무작정 외고가 좋다는 말에 외고 준비를 시작했다. 외고를 많이 보냈다는 토피아에 들어간 이유도 그랬다. 처음 학원에 들어가자 뭐 이런 곳이 다 있어 라는 생각이 들었다. 4시간 이상 학원에 있다니...
담임선생님이 반마다 배정 되어 있다는 사실도 놀라웠다. 첫 상담에 너는 외고에 갈 수 있다고 말씀해주셔서 자신감을 얻었다. 토피아에서의 생활은 즐거웠다.

친구들과 즐겁게 공부하다 보니 어느새 100일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떨리는 마음과 함께 극도로 불안해졌다. 그 때 담임선생님의 컨설팅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매주 본 모의고사 성적과 함께 한 상담은 충격적이었다. 영어 성적도 그렇고 언사 성적도 썩 좋지 않아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고 입시는 체력 싸움이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체력 관리와 컨디션 조절에도 힘썼다. 매번 입시에 관해 설명해 주신 자료들도 큰 도움이 됐고, 체계적인 수업 방식으로 좋은 학습 습관을 기를 수 있었던 것 같다. 선생님들은 열정적으로 가르쳐 주셨고, 많은 자료를 주셔서 다른 학원에 다니지 않아도 충분했다. 인터넷 강의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집에서 인터넷 강의를 듣다 보니, 수업 시간이 미처 듣지 못한 것들도 배우게 되었다. 1주일 마다 내주신 리스닝 보조 교재도 도움이 많이 되었다. 규칙적으로 리스닝을 하다 보니 실력이 느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번 외고 전형은 내신과 입시를 함께 준비하느라 더욱 힘들었던 것 같다. 내신 기간에는 내신을 하면서 입시 또한 관리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힘들게 준비했기 때문에 합격의 기쁨이 더욱 크게 느껴진 것 같다.

합격 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너무 기뻤고, 지금까지 노력한 결실이 맺어진 것 같아뿌듯했다.

교과서에서 의미만 외웠던 고진감래를 경험으로 깨닫게 된 것이다.

이건명상계중

민사고

민사고를 가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면서 내가 처음으로 준비한 것은 토플이었다.
영어라면 늘 자신 있었지만 모든 영역에서 좋은 점수를 받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두달 동안 학원을 다닌 후 처음 본 시험에서 110점을 받았다. 그 뒤에는 KMO 1차, 민사수경, 그리고 국어인증시험을 준비했는데, 나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습관 때문에 밤늦게까지 학원에서 공부하는 것이 오히려 비효율적이고 지치게 만들어 4월부터는 학원을 그만두고 집에서 혼자 공부했다. 혼자 공부하는 것이 때론 불안하기도 했지만 실력만큼 성과를 거둔다면 결과에 상관하지 않으리라 마음먹었다. 만족할 만한 성적은 아니었지만, 나는 KMO 1차에서는 장려상을, 민사수경에서는 3급을, 그리고 국어인증시험에서는 4급을 받았다.

이후 여름방학이 되면서 나는 토피아 민사반에 합류하게 되었는데, 차근차근 준비해온 다른 친구들에 비해 여러 가지 부족한 점이 많았다. 풀이과정을 생략하고 머릿속으로 문제를 풀던 버릇 때문에 수학점수는 형편없었고 특히 별로 접해볼 기회가 없었던 인문사회영역을 처음부터 공부했어야 해서 막막했다. 그렇지만 인문사회영역 공부를 하는 것이 아주 재미있었고, 수업을 시험 공부하는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나 자신에게 유익한 차원에서 듣고 싶어졌다. 그리고 공부를 하면 할수록 수학 문제의 유형에 대해서도 좀 더 익숙해졌고, 과학영역에서 다른 친구들이 이미 공부한 부분은 선생님께서 따로 시간을 내어 정리해주시는 수고 덕분에 차츰 정리가 되어갔다.

영재판별검사를 본 이후,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승복하기로 했지만, 합격임을 확인할 때의 그 긴장감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강다영창문여중

민사고

민사고…. 정말 꿈에 그리던 민사고에 합격했다는 사실이 아직도 실감되지 않는다. 학교에서 마주친 선생님들과 부모님 그리고 친구들의 축하 메시지를 들을 때에야 “아, 내가 합격하긴 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1년 전, 아니 9개월 전만 해도 ‘민사고’는 말 그대로 ‘꿈의 학교’였다. 자칫하면 사라질 수도 있는, 가까우면서도 한참이나 멀리 존재하는 듯한 ‘꿈’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조금씩, 조금씩 지나고 민사 입시가 하루하루 다가올수록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생기게 되었다. 나는 합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 어찌 보면 자기 최면에 가까운 자신감. 이 자신감이 날 이 자리까지 이끌어 준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내가 처음으로 토플을 보았을 때는 2007년 12월 1일.
민사고 원서접수까지는 길어봤자 10개월 남은 때였다. 그리고 설상가상으로 내 첫 토플 점수는 80점. 민사고는 꿈도 꾸지 못할, 너무 저조한 점수였다. 게다가 민사고 수학 경시대회 및 영재 판별 고사를 대비할 기간까지 따진다면 내가 전적으로 영어에 투자할 수 있는 시간이 고작해야 4개월이었다. 4개월 동안 독해와 청취, 말하기 그리고 쓰기까지, 네 가지 영역의 공부를 모두 해야 했다. 앞길이 막막했다. 스스로 책을 사다가 풀어보기도 하고, 선생님께 부탁드려서 개인 보충을 받기도 하고, 친구 공부 방법을 그래도 따라해 보기도 하고…. 정신을 차린 후에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였다. 그 결과, 105점이라는, 다른 사람에게는 너무나도 낮은 점수일 수 있지만 나에게 만큼은 꿈만 같은 점수를 얻을 수 있었다.


민사 수학 경시대회는 윤원영 부원장님의 도움을 정말 많이 받았다.
처음 윤원영 선생님의 수업을 들었을 때는 상당히 편했다. 수업을 광속으로 나가는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해서 수업이 지루하지도 않았다. 뿐만 아니라 선생님의 수업은 숙제가 없었다. 이 사실이 날 너무 편안하게 만들었다. 물론, 윤원영 선생님께서 “이것도 좋은 문제고,”나 “이거 풀어보고 싶은 사람은 풀어 보고.”라는 말이 모두 숙제를 뜻하는 것을 알기 전까지만 말이다. 이런 말들의 속뜻을 알아챈 이후에는 숙제가 넘쳐나는 수업이었던 것 같다. 윤원영 선생님은 언제나 혼내는 것도 ‘강압’보다는 ‘권유’로 하셨다. 해이해질 때 마다 윤원영 부원장님께서 날려주시는 따끔한 충고 한마디에 매일 매일 마인드 컨트롤을 했던 덕에 지금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것 같다.
과학 같은 경우에는 정연화 선생님의 수업을 듣고 하이탑을 두세번 정도 읽어보는 것으로 마무리한 것 같다. 처음 읽을 때는 문제를 풀 수 있을 정도로만, 두 번째 읽을 때는 세세한 내용까지 연필로 하나하나 체크해 가면서 읽고 마지막에는 체크해 놓은 부분을 위주로 눈으로 읽었다. 과학 영재 판별 고사를 준비할 때는 화학 올림피아드를 준비했던 경험이 상당히 많은 도움이 되었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내 좌우명이자 민사고를 준비하면서 매일 되새긴 말이다. 워낙에 낙천적인 내 성격 덕에 민사고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지는 않았지만, 이 문구도 내게 큰 힘이 되었다. 지금 이 상황을 즐기는 것. 아마 중계 토피아 3L반이 가장 잘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학원 오는 것이 즐거웠던 그러다가 결국에는 학원을 사랑하게 된(?) 3민사.(ㅋㅋ) 다른 공동체가 아니라 3L에서 민사를 준비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한다. 힘든 민사 입시 준비 도중에도 학원 오는 것이 싫거나 짜증나기 보다는 기다려지고 즐거웠으니까. 그리고 다시 한 번 윤원영 선생님과 배민수 선생님, 정연화 선생님, 김혜경 선생님, 이상훈 선생님 그리고 우리 엄마 아빠를 비롯한 우리 가족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감사합니다!!

김혜진상경중

민사고

2007년 이 맘 때의 내 모습. 그리고 지금의 나. 1년이라는 365페이지의 책장이 넘어가는 동안 그 이전과는 다른 것을 경험했고, 많이 바뀌었다.

정말 많이.

민사고를 내 목표로 삼게 된 것은 2학년 2학년 기말고사가 끝난 후였다. 그 때까지 막연하지만, 그래도 내 가슴깊이 뿌리내리고 있던 목표는 대원외고였다. 민사고는 감히 내가 바라볼 수도 없는 학교였다. 하지만 외고 준비를 위해 학원을 알아보는 도중, 갑자기 오기가 생겼다. 외고라는 목표에 도전을 한다고 했을 때, 내게는 어느 정도의 여유가 있었다. 내신도 별로 감점이 되지 않았고, 영어도 못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He can do it, she can do it. Why not me? 어느 날 내 마음을 후려친 이 한 구절. 그래, 목표는 크게 잡자. 나는 민사고 반에 들어갔다.

무척 주눅이 들었다. 첫날부터 내 존재에 무감각한 친구들. 처음 시작한 내게는 벅차다고 느껴졌던 수업 내용. 처음에 난 나와 비슷한 시기에 학원에 들어온 친구들과는 달리 기존의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그래서 더 서러웠다. 정말 나를 이곳에 오게 했던 그 오기가 깡이 아닌 허풍이었던 건 아닐까. 수학은 약했지만, 토플에 집중해야 할 시기이기에, 토플과 국어 인증에 주력을 다했다. 난 두려웠다. 원래 내 자신을 믿고 의지하지 못했던 나에게, 새로운 도전과 과제는 내 자신을 더욱 낮추게 만들었다. 그냥 계속 공부만 했다. 집에서는 밥 먹으면서도 문제를 풀었고, 학원을 오가는 버스 안에서도 나는 영어 지문을 읽었다. 제일 처음 따낸 점수, 토플 105점. 옛날 학원 모의고사에서는 90점 정도를 받았었는데, 예상보다 높은 점수에 정말 기뻤다. 인증 2급. 턱걸이 점수로 받은 2급이기는 했지만, 원래 목표보다 더 큰 성취는 보람과 달콤한 미래를 보장해주는 듯 했다.



하지만 순탄하지는 않았다. 토플 109점을 받은 이후 나는 성적을 더 올릴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토플을 그만 두었다. 지금은 무척 후회되는 결정이다. 왜 조금 더 용기 있게 행동하지 못했을까. 한 번 판 우물인데 더 깊이 파내려가지 못했을까. 그 후 수학경시대회를 위한 본격적인 공부를 시작했다. 토플, 인증과는 달리 정해진 날짜, 그 하루가 끝인 시험. 스무 문제 중에 다른 아이들도 최소 다섯 개는 맞히는 시험을 세 개만 맞히고, 친구가 다 맞히는 시험을 반도 못 맞히고. 역시 수학의 장벽은 너무나도 높았다. 언어영역, 토플과 국어 인증은 평소에 내가 외고에 맞추어 공부해 왔기 때문에 그나마 괜찮았지만, 수학 선행은 중학교 과정 이외에는 거의 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내게는 미개척지나 다름없었다. 오답노트를 만들고, 영어와 다른 것은 모두 미뤄놓고 수학 공부를 했다. 이 때 난 꿈에도 수학문제가 나왔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4급. 너무 떨었나보다. 예상치 못했던 등급에 눈물이 나왔다. 새벽 두 시까지, 그리고 그 후까지 내 정신을 깨우던 채찍이, 달려왔던 나의 노력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3등급은 어렵지 않게 받을 거라 생각했던 내 기대가 무너지고 나니 내 자신에 대한 신뢰가 다시 한번 무너졌다.

착잡한 마음으로 국어 토론 대회를 준비했다. 이것마저도 안되면 서류전형에서 떨어질 거라는 생각으로 나를 지탱했다. 내가 이길 거라고 자신했던 게임에서 선생님들의 가혹한 판정을 들을 때, 2승 3패를 했을 때, 그냥 눈물이 흘러내렸다. 지금 생각해보니 참 많이 울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우수토론자가 되어 좋은 점수를 받은 덕분에 결승전에 나가고, 은상을 받았다.

화학 올림피아드와 서류전형, 그리고 영재 판별 검사. 70일 밖에 남지 않았다. 화학 올림피아드에서는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다. 그 후 영재 판별 검사를 준비하면서, 그 누구보다 늦은 시간까지 학원에 남았다.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았다. 마음을 흐트러뜨리고 싶지 않았다. 내가 조금이라도 마음을 느슨하게 하면, 나사 하나가 풀어졌을 때 기계를 못 쓰게 되듯이 내 자신이 망가질 것 같았다. 학원에서 자습하다가 잠이 든 날도 있었고, 불안에 떨다가 하루가 지나가기도 했다. 1학기 때는 그나마 학교 수업을 열심히 들었는데, 2학기 때는 수업을 들으려고 노력하다가도 그냥 잠이 들었다. 학교에서는 내가 깨어 있는지도 잘 몰랐다. 서류를 작성하면서 서류 제출일 날 자필로 서류를 작성하느라 하루를 꼬박 새고, 그 다음날 13시간을 꼬박 잘 만큼 나는 피로에 지쳐있었다. 옆에 친구들이 있다는 것은 이때는 내게 큰 위안이 되었다. 같은 시험을 준비하면서 같은 감정을 느낀다는 것. 함께 한다는 것.

시간은 정말 ‘날았다.’ 영재 판별 검사와 면접, 달리기까지 끝내는 순간 정말 끝났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선배들 후기 보니까 그냥 얘기 안 하고 참았다는데. 그냥 잘 될 거라는 긍정적인 생각만 했다는데. 물론 실제로는 무척 떨었겠지만. 중간고사 준비를 하면서 결과발표는 나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공교롭게도 중간고사가 끝나는 날이 결과 발표가 나는 날이었기 때문에, 공부를 하다가도 집중을 못하고 내가 영판에서 왜 이걸 생각하지 못했을까, 왜 면접에서 그 얘기를 그렇게 이상하게 했을까 하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결과 발표를 기다리는 마지막 5분. 이름, 주민번호, 수험번호를 다 쳐 놓고 시간이 다 되기를 기다리는데 먼저 눈물이 나왔다. ‘무지개 원리’에서 읽은 말이 떠올랐다. 인디언들의 말. 그들은 어떤 소망을 만 번 말하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는다. 그냥 ‘나는 합격할 거다’하는 말만 계속 중얼거렸다. 핸드폰 시계가 5시 정각을 알리는 순간, 합격이라는 결과를 보는 순간 정말 지금까지 어려웠던 게, 나를 무너뜨리려고 했던 힘든 입시의 과정들이 모두 즐거웠던 것처럼만 느껴졌다. 이 결과를 얻기 위해서라면 내가 다시 공부를 하다가 쓰러진다고 해도, 모든 과정을 다시 반복해야 한다고 해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Mind Control. 입시에서는, 그리고 큰일을 앞에 두었을 때는 내 마음을 잘 다스리는 것이 정말 큰 역할을 한다. 나는 자존감이 많이 부족했다. 내가 할 수 있을까 끊임없이 의심했고, 결국 시험 앞에서는 내가 준비해온 만큼의 실력을 십분 발휘하지 못했다.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한 후에는 다시 그것 때문에 내 자신에게 큰 기대를 품지 못했다. 그 때문에 선생님들과도 많이 상담했다. 넌 할 수 있다고 끊임없이 말씀해주신 윤원영 선생님, 그리고 다른 선생님들. 정말 감사한다. 이제는 나를 믿을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할 수 있다. 어떤 일에 부딪혀 깨어지는 일이 있더라도, 깨어지지 않기 위해 다시 물러서고 싶지는 않다.

가족들에게도 무척 고맙다. 나는 공부를 하면서 엄마 아빠와 무척 많이 싸웠다. 내 건강을 염려하시는 부모님과 공부를 더 해야 한다고 생각한 나는 계속 부딪혔고, 입시에 매달리기에 너무도 바빴던 나는 부모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너무 죄송하고, 또 감사하다.

나는 더 큰 꿈을 꾸고 싶다. 사람은 상상하는 만큼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나는 믿는다. 면접 때 내 옆에서 면접을 보던 한 친구가 한 이야기이다. 코이라는 물고기의 이야기. 어항 속에서는 10cm 밖에 자라지 않지만 강물에 풀어주었을 때 1m 20cm까지 자랄 수 있다는 물고기. 민사고는 내게 있어서 지금까지 있어왔던 곳들보다 훨씬 큰물이다. 나는 바다로 가고 싶다. 그리고 나는 민사고에서 바다로 헤엄쳐 가기 위해 더 클 것이다.

윤덕화중원중

한국과학영재학교

작년 초까지만 해도, 나는 부모님께서 걱정하시는 소리를 주워듣고 외고면 외고, 일반고면 일반고, 과고면 과고, 갈피를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바람에 흔들리는 한 줄기 갈대와 같았다. 그러던 중, 부모님과의 상의 끝에 이곳 토피아 영재센터 시험을 치르고 중2 과고반에 들어오게 되었다. 과고반 수업에 적응이 되고, 다른 과고 지망생들과도 친해지고, 이야기를 주고받아 보면서, 이전까지는 막연하게만 잡던 미래의 꿈이 보다 현실성 있게 느껴지기 시작했고, 과고/영재고쪽으로 확실히 마음의 향방을 다잡을 수 있었다.

마음은 그렇게 다잡을 수 있었지만, 과고/영재고에 관련된 심화나 선행을 중학교에 들어서야 시작한 나는 출발이 남들보다 한 발 늦은 것은 아닌지 종종 우려하고는 했다. 그런 우려를 넌지시 이야기할 때마다 토피아 선생님들은 조언과 격려의 말씀을 해주시며 내가 무기력증에 빠지지 않고 공부에 집중할 수 있도록 기운을 북돋아 주셨다.

하지만, 과고와 영재고 입시에 정열을 불태우면서도 정작 나 자신은 그렇게 차근차근 쌓아온 실력을 제대로 발휘해야 할 순간이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별로 인식하지 못했다. 지난 1월, 새해를 맞이함과 동시에 중3이 되는 나는, 그 때까지도 입시라는 대사가 코앞에 다가왔다는 사실을 미처 체감하지 못하고 매일 매일의 숙제 속에 빠져 살았다.

부모님께서도 그동안의 노력이 올해의 시험으로 판가름이 나고, 토피아 선생님들도 입시는 합격 아니면 탈락으로 결판이 날 뿐이라고 누누이 말씀하셨건만, 정작 당사자인 나는 별 감흥이 없이 그저 매일의 할 일을 수행할 뿐이었다.

하지만 중간고사가 끝나고, 한국과학영재학교의 선발 공문을 접하면서 나도 입시란 것이 더 이상 멀리 있는 것이 아니고, 바로 옆까지 바싹 가까워졌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3학년 1학기까지의 수,과,국,영, 내신이 비교적 좋았기 때문에, 나나 부모님 모두 영재고 지원 원서를 써야 하는지, 아니면 영재고를 포기하고 여름 방학 동안에 과고 구술에 대비하여 과학을 집중 공부해야 하는지에 대한 확신이 부족한 상태였다. 고민하던 나는 토피아 선생님께 상담을 청했고, 선생님께서는 내가 궁금해 하는 여러 가지 정보를 가르쳐 주시는 한편, ‘가장 중요한 것은 합격 가능성이 아니라, 본인이 의지를 가지고 그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후회하지 않는 선택을 하는 것’이라는 중요한 사실을 일깨워 주셨다. 선생님의 충고 덕분에 나는 떨리는 입시의 순간들을 별다른 미련을 남기지 않고 보낼 수 있었고, 시험장에서도 최대한 긴장하지 않고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드러내 보일 수 있었다.

이 자리를 빌려서 다시 한 번 충고해 주신 선생님께 감사를 표하고, 영재고 입시 관련 수업을 진행하시면서 족집게처럼 문제를 집어내는 요행을 바라시지 않고, 학생들을 믿고, 학생들이 시험장에서 떨지 않고 본연의 능력을 다할 수 있도록 지도하는 데에 최선을 다하신 다른 토피아 선생님들께도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그리고 같이 수업을 들으면서 건전한 수업 분위기 확립에 기여해 준 여러 친구들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영재고에 합격한 지금은, 토피아에 들어오기로 결정한 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나의 행동과 선택을 하나하나 되새겨 보며 뿌듯하고 자랑스럽기도 하고, 앞으로도 초심을 변치 않고 더욱 최선을 다하겠다고 굳은 결의도 다져보고는 한다.

이규홍원묵중

민사고

♣ 수학

나는 윤원영 선생님이라는 좋은 선생님 밑에서 수학을 배웠기 때문에 수학에 관해서는 별로 문제될 것이 없었다. 윤원영 선생님의 수업을 듣고 있자면 정말 수학에 빠져들고 수학이라는 하나의 학과목뿐만 아니라 입시를 준비함에 있어 윤원영 선생님의 따끔한 충고는 굉장한 도움이 되었다. 원영쌤 정말 짱이다. (밥... 사주실꺼죠^^?)
수학은 타고난 감이 성적에 적잖게 영향을 끼친다. 문제를 보자마자 풀어버리는 이상한 애들을 보며 나도 그 생각을 많이 했었다. 예전에는 나도 저렇게 믿었다. 근데, 친구 최민규 보면서 생각이 좀 바뀌더라. 얘가 수학 되게 잘하는 애인데, 옆에서 지켜보니까 누구보다도 더 열심히 수학 공부 하더라. 생긴 건 안 그래가꼬... 심지어 중요한 내용은 정석책 어디에 나오는 지까지도 줄줄 꿰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아, 잘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민규야, 보고있니? 난 과자 하나면 되^^) 나는 수학이 어려운 이유가 성적이 공부하는 대로 즉각즉각 오르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오르는 게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쉽게 포기하게 되고 의지가 흔들리게 된다고 믿는다. 하지만 어떠한 일도 갑자기 이루어지지 않는다. 한 알의 과일, 한 송이의 꽃도 그렇게 되지 않는다. 나무의 열매조차 금방 맺히지 않는데, 하물며 인생의 열매를 노력도 하지 않고 조급하게 기다리는 것은 분명히 잘못이다. 그니까 결론은, 열심히 공부하라고. 솔직히 수학이 책 보고, 문제 풀고 오답하고 오답한 거 보는 것밖에 더 있나.

♣과학
과학은 정말 정연화 선생님이 잘 가르치신다. 밥을 얻어먹기 위한 필사의 몸부림이 아니라 이건 진짜다. 그러니까 수업 시간에 졸지 말고 열심히 수업 듣자. 평소에 배우는 게 영판에 나올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영판에선 정말 기본적인 것들이 나온다. 식물이 물을 어떻게 땅에서 흡수하고 흡수한 물을 위로 올려 보내는 원리는 무엇인가? 라는 문제가 이번 영판에 나왔었다. 나처럼 이런 문제 틀리고 후회하지 말고 수업 시간에 열심히 듣자. 듣는 게 남는다.
과학이 민사 입시에서 중요한 요소는 크게 두 가지이다. 화올에 관해선, 2학년 때부터 착실하게 준비했으니 잘 할 거라 믿는다. 두 번째는 영판 때 나오는 과학 문제들인데, 이 문제들은 위에서 말한 것처럼 대부분 기초적인 것들만 묻는다. 그러니까 쫄지 말고, 그렇다고 자만하지도 말고 평소에 공부해 두는 게 영판 보면서 후회하지 않는 지름길이다.

♣영어
음, 영어는 다들 잘한다고 들었기 때문에 특별히 해주고 싶은 말은 별로 없다. 다만, 내가점수가 유난히 낮은 스피킹에 관해 몇 마디 끄적거려보자면, 스피킹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실력이다. 하지만, 스피킹 만큼 시험보는 요령이 중요한 부분도 없다. 엘씨 더미 나올 때 눈치껏 남의 스피킹 들어주는 것은 기본 센스요, 각 문제마다 모든 유형에서 쓸 수 있는 표현을 만들어 두는 것도 좋다. 말이 좀 어려운데, 예를 들자면 Problem Solving 문제에서 ‘만약 ~ 한다면, ~ 은 더 이상 그의 고민거리가 아니다.’라는 표현을 만드는 식으로 말이다. 다들 영어 실력이 좋으니 더 이상은 Pass.

♣국어
내신 때 배우는 국어는 솔직히 필요 없다. 버려도 되는 수준은 아니지만 암튼 심각하게 고려할 수준도 아니니까 Pass. 나는 국어인증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물론 수경 등급과 토플 점수, 영판 등에 밀려 좀 등한시 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인증 등급이 실력이 없어도 운 좋게 민사고에 진학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즉, 국어 인증 등급 잘 따서 민사고 국어 토론 대회에 나가는 것이 민사고 합격에 굉장한 도움이 된다는 소리이다. 실제로, 중계와 강남 통틀어서 국토 나갔던 사람들이 다 합격했다. 그러니까, 인증 무시하지 말고 국어 토론 대회에 나갈 수 있도록 열심히 공부하길 바란다.

끝으로, 물론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민사고 합격에 있어 제일 중요하다. 하지만, 공부를 하면서 여유를 갖는 것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믿는다. 수능 4일 전에 컴퓨터 게임하고도 경희대 한의대에 진학한 사람도 있다더라. 그러니까 너무 공부에 매달려서 자신을 괴롭히지 말고, 면접 하루 전에 친구들과 볼링 칠 수 있는 여유, 영판 하루 전에 옆방에 가서 벨튀(...)를 할 수 있는 여유 정도는 갖고 살아가는 게 좋지 않을까. 이왕 합격할거면 브레이크 없는 공부 기계보다는 쉬엄쉬엄 공부하는 학생이 더 인간적이잖아. 이런 자신감, 혹은 자만심이 입시에 있어 독이 될 수도 있지만 나에게 있어선 지치지 않고 설렁설렁 뛰어갈 수 있는 좋은 약이 되었다고 믿는다.

김동환도송중

민사고

“저는 어렸을 때 ‘엘렌 그뤼모’와 같은 피아니스트가 되는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나의 면접이 시작되었다. 3개월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내가 해 온 모든 일들을 속사포처럼 쏟아내야 할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지방에서 생활했던 나에게 3개월의 시간은 마치 사하라 사막의 끝없이 반복되는 모래 언덕을 넘어가는 것과 같았다. 그 모래 언덕들은 단순히 몇 분 걸어서 쉽게 넘어갈 수 있는 높이의 언덕이 아니었다. 며칠을 계속 걸어도 넘어갈 까 말 까 한 그런 거대한 것이었다.
그 첫째 언덕이 바로 국어능력인증시험이었다. 이때까지 국어 과목은 학교 내신 시험에만 집중해서 공부를 해온 나에게 특히나 수준 높은 어휘 내용은 매우 어렵게 느껴졌었다. TOPIA에서 모의고사를 칠 때에도 그동안 다양한 책을 읽었던 터라 읽기 부분에서는 그런대로 괜찮은 점수를 얻을 수 있었지만, 어휘 부분에서는 언제나 낮은 점수를 받았던 것이다. 결국, 나는 어휘 파트에서 고득점을 받기 위해서는 기본 개념에 충실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결국 나만의 단어장을 만들었다. 먼저 이때까지 풀어왔던 문제에서 모르거나 헷갈리는 단어들을 중심으로 차근차근 익혀가다 보니 실전에서는 만족할 만한 점수를 얻을 수 있었다. 국어 공부의 기본인 어휘공부를 탄탄히 하다 보니 사소한 실수나 단어를 몰라 틀리던 읽기, 시사 분야에서도 그 효과를 톡톡히 볼 수 있었다.
어렵사리 첫째 고비를 넘겼다고 생각하여 저 앞을 바라보면 이제는 더욱 큰 언덕인 TOEFL 시험이 내 앞에 놓여있었다. 그때 나는 내가 설정한 목표를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특히 스피킹 부분에서 다른 파트만큼 점수가 나와 주지 않아 매우 어려움을 겪었는데, 인터넷 사이트를 활용해 내가 녹음한 파일과 다른 사람의 것을 비교해 가는 식으로 준비를 하였다. 나와 공부한 친구들 중 많은 아이들이 소위 ‘포맷’이라고 불리는 것을 외워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에 끼워 맞추는 형식으로 공부하는 것을 보았다. 매우 효과적인 방법인 듯하다. 하지만 나는 고득점을 위해 따로 포맷을 외워 써먹지 않았다. 어딘가 모르게 부자연스러운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민족사관고등학교 입시를 위해 달려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민사고 주최 수학 경시대회’를 들어보았을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라 영재판별고사까지 연결되는 수학이므로 꼼꼼히 공부해 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수학은 학원에서 영재판별검사를 치기 전 선생님께서 수학의 정석에서 핵심만 뽑아 참고할 부분을 가르쳐 주셔서 큰 도움이 되었다. 또한 이때까지 풀어온 모의고사들을 꼼꼼히 오답노트를 작성하며 복습을 위주로 공부하였다.
내가 민족사관고등학교 입시를 위해 공부를 해 오면서 가장 힘들어했던 과목은 바로 과학이다. 다른 과목과 달리 과학은 선행이 하나도 되어있지 않은 상태에서 많은 양을 내 것으로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시간이 너무 촉박해 문제집의 문제를 다 풀지도 못할 지경이었다. 과학 공부를 할 때에도 나는 기본 개념을 정확하게 알아두는 것을 우선으로 하였다. 물리 과목은 단어 하나하나의 정의를 정확하게 짚고 넘어갔고, 지구과학은 현상적인 것들을 중심으로, 생물은 좀 더 세세하게 공부하였다. 학원 수업만을 듣다보면 나중에 다른 숙제들 때문에 밀려 수업내용을 기억해내지 못하는 때가 많다. 나도 이러한 경험을 많이 하였기 때문에, 그럴 때마다 선생님께 질문을 하고, EBS 강의를 들으면서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였다.

입시 준비를 하면서 내가 이때껏 잘 버텨올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 하고 생각해보았다. 내 친구들은 대부분 자신감이 그들에게 동기부여를 해 주었다고 한다. 자신감을 가진다는 것은 나 자신을 믿는다는 것이다. 그러한 뚝심으로 끝까지 우직하게 공부한다는 의미인 것이다. 그러나 열등감도 필요하다. 지나친 열등감은 패배감으로 이어지고, 결국, 자신감도 잃게 한다. 그러나 적당한 정도의 열등감은 항상 나에게 따라잡을 목표를 제시해준다.

네덜란드 출신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는 이렇게 말했다.'Great things are done by a series of small things brought together.' 언제나 큰 목표만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것을 성취하는 과정에서 지치기 마련이다. 그러나 열등감은 단기 목표를 제시해준다. 이러한 단기목표 하나하나를 충실히 이루어간다면, 결국에는 더욱 큰 목표를 성취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최민규을지중

민사고

이름 최민규 주민등록번호 XXXXXX-XXXXXXX 수험번호 1142....................... 엔터
평소엔 빠르던 컴퓨터가 오늘따라 느리다. 화면이 바뀌고 화면 중앙에 어떤 글씨가 보이기 시작한다.



"축하합니다."
순간 잘못본줄 알았다. 다시 눈을 비비고 보니 그대로 "축하합니다." 이었다.
눈물이 먼저 눈에 고였다. 기뻐서, 너무 기뻐서, 행복해서, 내가 원했던 것을 얻어내어서 눈물이 내 눈앞을 가렸다. 눈물 때문에 "축하합니다."란 글씨와 배경 꽃다발 그림이 뿌옇게 보였다. 그때 모든 것을 끝내고 민사고 운동장을 돌던 내가 생각났다. 그리곤 면접을 보던 나, 체육관에서 열심히 영재판별검사를 보고 있던 내가 차례로 떠올랐다. 계속해서 시험 며칠 전에 공부하던 것이 생각나고, 민사고 수학경시를 보던 것이, 국어인증을 보던 것이, 추운 겨울에 토플을 보던 것이 생각났다. 이 모든 것이 영화에 나올법하게 차례로 내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리고 다시 컴퓨터 모니터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번엔 눈물은 안 나오고 그저 기쁘기만 했다. 2년 반 동안 꾸준히 보고 걸어온 결승점에 마침내 들어온 것이 너무 기뻤다.

2년 반 동안 때론 걷고, 때론 뛰어오는 동안 물론 장애물도 많았다. 영어 단어들을 외우는 것이 너무 힘들었던 적도 있었고, 수학이나 과학 시간에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어서 하염없이 시간을 보낸 적도 많았다. 계속 해도 늘지 않는 스피킹 때문에 속도 상했고 몸도 점차 지쳐갔다. 며칠 동안은 아무것도 하기 싫어서 그냥 가만히 산송장같이 있기도 하였다. 한번은 너무 몸이 지치고 마음이 상해서 정말 진지하게 다 때려치우고 "그냥 평범하게 살까"하고 생각해보기도 하였다.



그런데 위기마다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워주고 뒤에서 밀어준 것들이 있었고 그들에게 모두 감사하다. 선생님의 따끔한 충고가, 한심하게 느껴지는 나 자신이, TV에서 보았던 민사고의 모습이, 나의 꿈이, 그리고 옆에서 같이 한걸음 한걸음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친구들이 나를 이끌어 주었다. 특히 친구들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자칫 힘들고 외로운 길이 될 뻔했던 입시라는 것이 주변의 친구들 덕분에 즐겁고 알찬 시간이 되었다. 한때는 친구들을 단지 150명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제쳐야만 하는 경쟁자로 생각했던 내가 너무 어리석었다. 이 싸움은 자신과의 싸움이지 전국의 중학생들과의 싸움이 아니었던 것이다. 친구들은 각자 자신과 싸우면서 서로 도와주고 힘이 되어주는 동맹군이었지 결코 넘어뜨려야할 적군이 아니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되면서 정말 즐겁고 알차게 민사고 입시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결국은 이렇게 나와의 싸움에서 승리한 것이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민사고 입시 준비는 나의 소중한 중학생의 추억이 될 것 같다. 비록 거의 3년을 공부에만 투자하는 바람에 다른 일들을 많이 해보지는 못하였지만, 주변의 친구들이 있었기에, 날 도와준 선생님들이 있었기에 훗날 편안하게 앉아서 과거를 회상할 때, 좋은 기억이 될 것이다.
다시 한번 친구들에게, 그리고 선생님들에게 감사하다.

이원준언주중

외대부속외고

제가 외고를 가겠다고 마음먹은 건 3학년이 시작되면서 입니다. 앞으로의 진로에 대한 생각이 보다 현실성 있게 다가왔고, 저의 실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 외고를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목표는 토피아가 있기 때문에 이루어질 수 있었습니다. 토피아의 좋은 선생님들과 체계적인 학습 시스템은 저에게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향을 알려 주었습니다. 또한, 선생님들의 철저한 관리와 상담을 통해 저의 능력과 외고에 대한 자신감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 또, 학원에서 제공하는 야간자습, 특강 등을 최대한 많이 이용해 실력을 쌓았습니다.

저의 경우 내신성적이 그다지 좋지 않아 유리한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내신에서 부족한 점수를 LC와 구술 시험으로 보완할 수 있었습니다. 몇 달 동안 입시를 위한 공부만 한다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하지만, 정말 간절히 외고에 들어가고 싶다는 마음, 아니 외고에 꼭 들어가겠다는 결심을 가지고 공부한다면 자신과의 힘든 싸움을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외고 입시는 자신의 한계를 넘는 싸움입니다.
‘피곤하다, 힘들다, 졸리다, 배고프다, 놀고 싶다’라는 많은 유혹과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생각에 끌려 다니지 말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나아가야 됩니다.
저는 제 자신을 믿고 꾸준히 노력하여 외고 합격이라는 열매를 맺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 뒤엔 항상 절 믿어주시고 밀어주시는 부모님과 선생님들이 계셨습니다.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승연신동중

명지외고

어렸을 때부터 여러 외고들의 명성을 들어왔고 외고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외고에 가려면 어떻게 공부해야 되는지 등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그러다 중학교 2학년 겨울방학부터 외고 입시학원에 다니게 되었다. 물론 외고에 합격하고 싶어서 열심히 공부한 기간은 그것보다 훨씬 짧지만, 다른 단과반 영어학원이 아닌 TOPIA에 다닌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난 ‘외고, 가면 좋고 떨어지면 말고’ 이런 생각을 갖고 있었다. 한마디로 목표 없이 막연히 공부했었는데 토피아에 와서야 비로소 확실한 목표를 갖고 열심히 하게 됐다. 외고를 준비하는 친구들과 같이 공부하고, 학생들을 외고에 합격시키는 것이 목표인 선생님의 수업을 들었다. 분위기가 다르다. ‘사람들이 이래서 분위기 좋은 특목고 가려고 하는구나’, 정말 목표가 중요하다고 느꼈다.

가장 좋은 점은 역시 ‘정보’였다. 선생님이 알려주는 입시정보도 많았고, 그 정보들은 항상 빠르게 업데이트되었다. 외고유형 문제와 기출문제를 많이 풀어본 것과 어떤 학교에 합격 가능성이 높은 지 담임선생님의 상담도 많이 도움이 됐다. 그 상담의 기초는 7월부터 매주 치러온 모의고사 성적이었다. 꾸준히 연습 삼아 본 시험 덕분에 외고 시험장에서 전혀 떨리지가 않았고 OMR카드가 친숙했다.

TOPIA 학원은 이런 장점과 달리 잘하는 학생들끼리 모여 있으니 기가 죽을 수도 있다. 외국 유학을 다녀온 친구들도 꽤 있는데 나는 순수국내파라 특히 영어듣기에서 기가 죽었다. 장문은 아무리 들어도 못 알아들으니 잠만 쏟아지고 큰 스트레스였는데 그래도 열심히 듣다 보니 조금씩 잘 들리고 이해가 됐다. 꼭 집중해서 듣고 문제를 풀지 않아도 잠을 잘 때 영어를 틀어놓고 자거나, 평소에 영어를 틀어놓고 흘려 듣는 것도 도움이 됐다

체력적으로도 많이 힘들었다. 할 공부는 많은데 시간이 없으니 잠을 충분히 못 잤다. 10시간을 자는 잠꾸러기인 나는 친구들보다 더 힘들었다. 체력을 기른다고 운동도 했고, 홍삼도 먹었지만 학교에서 집중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결국 나는 그냥 잘 만큼 자기로 했다. 고생하면서 낸 성과는 더 나쁘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TOPIA 학원은 숙제가 많은데, 난 잘 만큼 자면서도 숙제만은 제대로 했다. 대충대충 해서 숙제를 끝내기 보다 내가 공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친구문제도 마찬가지로 일반고에 진학하는 친구들과 똑같이 놀기 힘든데 그걸 잘 이해해주지 못하는 친구들도 있다. 그런 걸 잘 해결할 줄 알아야 한다.

물론 부족한 점과 후회하는 부분도 많다. 그 중 하나는 오답노트를 열심히 하지 않은 것이다. 시험이 임박해오면 긴장되고 초조해 새로운 공부가 어렵다. 평소 오답노트를 잘 정리해 이 때 보며 복습할 수 있었을 텐데 많이 후회가 됐다.

앞에서 입시학원 얘기를 많이 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본인의 노력이다. 내가 다닌 TOPIA 학원의 같은 반 친구들은 처음엔 비슷한 실력으로 만났지만 결과는 다 제각각이었다. 내가 지금 어느 위치에 있든 언제든지 뒤집힐 수 있다. 최선을 다하는 게 가장 중요하고 그럼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윤해리도봉중

민사고

제가 민족사관고등학교를 준비하면서 감동적이었던 일화가 별로 없었던 관계로 그냥 민사고 15기, 16기가 될 후배들을 위해 제가 지금까지 어떻게 공부했는지를 밝히겠습니다.
국어 : 국어인증은 어렸을 때부터 책을 많이 읽어서 어휘력이 풍부한 게 중요해요. 그렇지만 입시가 코앞인 마당에 책을 많이 읽는 것은 무리일 수 있으니 토피아 국어인증 교재에서 어휘 부분을 철저히 외우는 것이 중요해요. 어휘문제가 많이 나오지는 않지만 그런 어휘를 바탕으로 독해도 하고 서술형도 작성할 수 있으니 일단 어휘를 최대한 많이 외우는 것이 국어인증에 도움이 될 거예요ㅋㅋ
수학 : 수학은 다양한 문제 유형을 접하고 오답노트를 만들어 모든 문제유형에 대해 대비하는 것이 가장 좋아요. 윤원영 선생님이 주시는 프린트와 해설집만으로도 제가 말한 것을 실천할 수 있어요ㅋㅋ 그래도 만약 KMO에서 수상을 하고 싶다면 윤원영 선생님의 프린트 외에도 따로 시경시, KMO, 에이미 문제 등을 풀 필요가 있어요ㅋㅋ
영어 : 영어는 제 점수가 별로 높지 않았기 때문에 특별히 드릴 말씀이 없네요ㅋㅋ 어쨌든 iBT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문제를 많이 푸는 것이에요. 그리고 시험 날 컨디션이 두 번째로 점수에 영향을 많이 미친다고 생각해요ㅋㅋ
과학 : 과학은 하이탑을 열심히 공부해야 됩니다. 이번 영판 문제도 그렇고, 화올, 물올 등에서 수상을 노릴 경우도 그렇고 고등학교 과학을 모른다면 높은 성적을 받기가 힘들 거에요. 결론은 하이탑과 정연화 선생님만 믿으면 돼요ㅋㅋ
민족사관고등학교 입시를 준비하다보면 장애물을 만나 좌절하게 되는 경우가 많을 것입니다. 그럴 때, 절대로 그 어려움에 굴복하지 마세요. 자신감을 가지고 내게 어려운 일은 모두에게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열심히 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에요. 그럼 모두 화이팅!ㅋㅋ

민도준대치중

민사고

지금부터 약 1년 전인 중학교 2학년 2학기 즈음 나는 민사고 입시를 두고 깊은 고민에 잠겨있었다. 민족사관학교 입학이라는 목표는 나를 그때까지 달려오게 했던 원동력이자 희망이었지만, 나는 자신이 없었다. 가뜩이나 내신 성적이 저조한데다 같은 학교에 ‘천재’라고 불리며 성공가도를 질주하고 있는 친구가 역시 민사고를 지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사고 홈페이지에서 합격 통지를 확인하자, 그동안 내가 전력을 다해 걸어왔던 길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부모님, 친구들과 공부했던 것도 즐겁고 유익한 경험이었지만 다른 무엇보다도 가장 소중한 배움을 얻었다. 바로 ‘세상의 말에 아랑곳 않고 자신의 길을 가는 자가 성공한다는 것을...

민사고는 외부에 왜곡된 모습으로 비춰지는 경향이 크다. 많은 사람들은 ‘민사고’하면 머리가 매우 비상해 주체할 수 없는 수재들의 학교를 연상하곤 한다. 하지만 내가 6개월 남짓한 시간동안 경험하고 도전해본 결과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민사고는 비전을 가지고 도전을 마다하지 않는 열정있는 자의 학교이다. 아무리 머리가 뛰어나도 열의와 비전이 없으면 들어갈 수 없다.



민사고는 그 어느 다른 고등학교보다도 까다로운 입시 절차를 가지고 있다. TOEFL, 국어능력인증시험, 수학경시대회 등의 요구 조건이 있고 내신 시험과 겹치는 일정의 영재판별검사가 있기 때문이다. 지원자는 학교 중간고사 2주전에 발표되는 서류 전형을 기다리며 공부하고, 통과하여 본선 시험인 영재판별검사를 치고 나면 바로 중간고사 시험을 쳐야한다. 수리 과학적, 언어적 능력이나 지식보다는 본인 자신의 끈기와 의지가 요구되는 부분이다.

준비 기간 중 불안함에 마음이 흔들리기도 한다. 무신론자인 나도 이때만큼은 신이 존재하기를 바라며 몇 번이고 기도했다. 이렇듯 긴 과정과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의지는 그 어떤 학원에서도, 어떤 선생님으로부터도 배울 수 없다.

이 수기를 읽고 있을 후배들에게 전한다.
젖먹던 힘을 다해 뛰고 있노라면 어느 순간 목적에 도착했으리라고...
번호 제목 작성일 조회수
1 2025학년도 합격수기 2025.01.16 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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